멈추지 않는 봉준호의 열차, 하나의 장르가 되다 [2022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계 인물]
한국을 세계에 심은 ‘거장’들 순위권…박찬욱 감독 2위, 성악가 조수미 3위 올라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에서 열차가 달린 이후로 지구상에서 영화는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이 지난해 칸영화제 개막식에서 남긴 말이다. 코로나19가 문화예술계에 많은 상흔을 남기는 동안에도 영화의 역사는 이어졌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시작점에는 봉준호가 있었다.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20년 2월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4관왕을 석권하던 순간에는 지대한 의미가 있었다. 봉 감독은 보수적인 아카데미의 벽을 무너뜨림으로써 한국 영화를 세계 영화사의 주류에 포함시키는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뉴스1

한국 영화계 거장 봉준호·박찬욱, 1·2위

돌아보면 한국 영화사의 변곡과 확장 지점에는 항상 봉 감독이 있었다. 한국 영화계에 충격을 줬던 《살인의 추억》(2003),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표본으로 자리매김하며 천만 관객을 돌파한 《괴물》(2006),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스무 개가 넘는 트로피를 거머쥔 《마더》(2009)도 영화사에 방점을 찍은 작품들이다. 해외 진출의 시작점이 된 ‘글로벌 역작’ 《설국열차》(2013)는 그에게도 도전이었다. 넷플릭스 《옥자》로 플랫폼 확장도 시도했다. 비록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옥자》의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은 영화산업과 OTT라는 플랫폼의 구조에 대해 전 세계가 재고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

‘봉준호’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봉 감독은 또 하나의 새로운 필모그래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새 영화는 에드워드 애쉬튼 작가의 SF소설 《미키7》을 기반으로 하는 SF영화로, 원작 소설은 얼음 세계 니플하임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파견된 인조인간 미키7의 이야기를 그린다. ‘봉준호의 시네마’는 멈춘 적이 없다는 것을, 봉 감독이 한국 영화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시사저널이 선정하는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문화예술 분야에서 봉 감독이 4년째 1위를 수성한 이유다. 올해 전문가 조사에서 봉 감독은 51.8%의 지목률로 1위에 올랐다. 올해 처음 병행된 일반인 조사에서는 2위(22.0%)였지만, 두 조사에 응답한 1000명 중 369명에게 지목을 받으면서 ‘거장의 힘’을 보여줬다.

또 한 명의 영화계 거장도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지목률 3.8%로 5위를 차지했던 박찬욱 감독이 올해 전문가 조사에서 2위를 차지했다. 지목률은 38.2%다. 《헤어질 결심》을 통해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며 다시 한번 한국 영화의 존재감을 내보인 그다. 무려 열 배 이상의 지목률 상승은 《올드보이》(2004)와 《박쥐》(2009)에 이어 칸에서만 세 번째 수상을 한 ‘칸느 박’의 저력이 부각되면서 나타난 결과다.

박 감독이 《아가씨》(2016) 이후 6년 만에 선보인 장편 한국 영화 《헤어질 결심》은 그동안의 전작과는 다르게 잔잔한 전개를 보여주지만, 탁월한 미장센 속에 인물이 품은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국내에서도 ‘조용한 흥행’을 만들어냈다. 관객이 많이 든 영화는 아니지만 오래 여운이 남는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기억되면서 《헤어질 결심》을 사랑하는 ‘헤결사’들의 N차 관람이 이어졌다. 영화의 팬덤은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와 같은 명대사들을 영화 밖으로 데려와 온라인에서 일종의 밈을 만들어냈다. 이 대사들을 텍스트로 담아낸 각본집까지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음은 물론이고, 과거 팬들의 요청으로 출간됐던 영화 《아가씨》 각본집의 판매량까지 견인했다.

ⓒ시사저널 박정훈·연합뉴스·BTS 공식 페이스북

‘신이 내린 목소리’ 조수미, 일반인 조사에서 1위

성악가 조수미가 전문가 조사에서 17.6%를 기록하며 3위를 차지했다. 서른이 되기 전에 동양인 최초로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의 프리마돈나로 데뷔했고, 성악가 최고 영예인 황금기러기상을 수상했으며, 동양인 최초로 국제 푸치니상과 그래미상을 받는 등 ‘최초’라는 수식어가 익숙한 세계적 소프라노다. 지난해 11월에는 아시아인들이 세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알리기 위해 창립된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한국인 최초로 헌액됐다. 그는 주요 무대에 서는 것 외에도 드라마 《명성황후》, 영화 《유스》의 주제가를 부르는 등 다양한 음악작업도 병행해 왔다. 데뷔 36년이 지났어도 이 정상의 성악가는 활동을 멈춘 적이 없다. 지난해 말에는 세계 최정상의 이탈리아 실내악 그룹인 ‘이 무지치’와 새 앨범을 발표했다.

세계 무대와 한국 도시를 순회하면서 노래하고, 음반을 녹음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2023년부터는 프랑스 파리에서 그의 이름을 딴 조수미 국제 성악 콩쿠르가 창설된다.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콩쿠르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세계적인 음악인을 키우는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하며 음악인들이 무대에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그의 목표 중 하나다.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음악가로 남고 싶다는 세계적인 소프라노의 다양한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예능 출연뿐 아니라 2020년 말부터 공식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음악과 노래와 콘텐츠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이 행보들이 성악가 조수미의 현재를 만든다. 올해 처음으로 병행한 일반인 조사에서 조수미가 27.2%의 지목률로 1위에 올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전문가 조사에서는 가수 방탄소년단(17.4%), 피아니스트 임윤찬(14.4%), 배우 송강호(12.4%)가 그 뒤를 이었다. 미국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5위다.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완벽하게 소화해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한 그다. 임윤찬이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는 유튜브 영상은 많은 대중을 스며들게 하며 66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방탄소년단과 송강호는 해당 분야인 방송연예 분야뿐 아니라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높은지목률을 기록하며 순위권에 올랐다. 이들이 유의미한 문화적 성취를 통해 한국 문화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높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22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어떻게 선정됐나

시사저널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설문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칸타퍼블릭’에 의뢰해 조사하고 있다. 그동안은 행정관료·교수·언론인·법조인·정치인·기업인·금융인·사회단체·문화예술인·종교인 등 10개 분야에서 100명씩 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비중을 조정해 10개 분야에서 50명씩 총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대신 일반인 조사를 신설해 일반 국민 500명을 대상으로도 조사를 진행했다.

올해 조사는 6월30일부터 7월18일까지 진행됐다. 전문가 조사방법은 리스트를 이용한 전화 여론조사로 이뤄졌다. 일반 국민 조사는 패널을 활용한 온라인 조사로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4.4%포인트다. 올해 5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통계 기준으로 가중값을 부여했다. 두 조사 모두에서 구조화된 질문지를 조사도구로 활용했다. 문항별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을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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