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헌트》에서 감독 겸 주연으로 맹활약
30년 차 배우 이정재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공적이다. 이정재 감독의 첫 연출작 《헌트》는 애초 배우로 출연 제의를 받은 작품이었지만 시나리오를 읽은 후 강렬한 이끌림에 결국 각본과 연출까지 맡게 됐다. 장장 4년여가 걸렸다.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충분히 선방했다.
영화 《헌트》는 조직 안에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이정재 분)와 김정도(정우성 분)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며 펼쳐지는 첩보 액션 드라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소속사 식구’이자 ‘오랜 벗’인 이정재와 정우성이 투톱 주연으로 나섰다. 이정재 감독은 “장르적으로 첩보 액션 드라마이며, 믿음과 신념에 갈등하는 사람들의 내용이 담겨 있다”며 “화려한 액션도 중요하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펼쳐지는 이야기, 그리고 그 상황들이 각 캐릭터들에게 어떤 결정을 내리게 하는지 주목하길 바란다”고 관전 포인트를 언급했다.
현장에서 이정재 감독은 연기자로서의 경험을 살려 디테일하게 진두지휘했다는 후문이다. 완벽주의자로 알려진 그는 촬영, 조명, 미술, 무술 등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파트에 대해 끝없이 고민했다. “배우들과 사전 리허설을 하면서 불편한 부분을 수정했고, 어떤 부분은 이겨내 주기를 설득했다”는 이정재 감독은 현장에서 배우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영화의 작품성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은 지켜내는 과정을 통해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예고했다. 이정재 감독의 첫 연출작 《헌트》는 제75회 칸영화제 비경쟁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되는 영광을 안았고, 9월10일 개막하는 제47회 토론토영화제에도 초청된 상태다.
이 감독은 주연배우로서도 맹활약한다. 그가 맡은 역할은 조직 안에 잠입한 스파이로 인해 주요한 작전이 실패하자 그 실체를 맹렬하게 쫓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다. 이정재는 1993년 드라마 《공룡선생》을 통해 연기자로 데뷔한 후 《모래시계》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단번에 스타 반열에 올랐다. 영화 《태양은 없다》까지 성공하며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장악한 그는 이후 30여 년간 톱스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전 세계를 매료시키며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켰고,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정재 감독을 직접 만나 《헌트》와 관련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시사저널 박정훈
감독으로 대중을 만난다. 어떤가?
“긴장은 된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과 역량을 다 쏟아부어서 아쉬움은 없다. 더 이상 내 머릿속에서 나올 게 없다.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하다.”
시사회 때 반응이 좋았다.
“앞서 5월19일 칸영화제에 초청돼 최초로 공개된 바 있다. 당시엔 로컬 색이 짙다는 반응이 꽤 있었다. 1980년대 한국의 정치·사회 분위기를 모르는 해외 분들이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각색을 시작했다. 이해도를 높이는 작업을 했다.”
영화를 찍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애초에 《남산》이라는 가제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강한 끌림을 느꼈다. 그러나 상업영화 형식으로 시나리오를 각색할 감독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내가 시나리오를 고치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 주제도 바뀌고 인물 관계도도 바뀌었다. 연인 관계가 있었는데 없앴고, 인물들의 목표도 수정했다. 원톱 주연에서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의 투톱 이야기로 각색했다. 결국 《헌트》라는 제목으로 바뀌게 됐다. 투톱이라 동등하게 이야기를 각색하는 것도 힘든 작업이더라(웃음).”
애초에 《비트》 《태양은 없다》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에게 연출을 부탁했다고 들었다.
“글쎄, 그 아저씨가 찍어줬으면 제일 좋았을 텐데. 그러면 제가 이 고생을 안 했어도 됐다. 하하. 어제도 만나자마자 ‘형이 좀 찍어줬으면 내가 이 고생을 안 했잖아!’ 하고 하소연을 했다. 성수 형이 《태양은 없다》를 연출한 감독이 아닌가. 《태양은 없다》 이후 저와 정우성씨가 처음으로 함께 하는 작품이다 보니 성수 형이 하면 의미가 크지 않나. 당연히 제안을 했고, 시간을 가지고 고민하더니 결국 안 해주셨다(웃음). 기사화가 되지는 않았으나 성수 형뿐 아니라 수많은 분께 부탁했다. 대한민국 톱 20위 안에 들어가는 감독들에게 모두 SOS를 했다.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하하.”
결국 연출도 연기도 다 해냈다.
“뿌듯함보다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작업이구나 싶었다. 하하.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 모든 걸 다 꼼꼼하게 짚고 넘어가는 성격이다 보니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잠을 못 자는 게 가장 큰 고통이었다. 연기와 연출을 다 하다 보니 체력이 많이 부족했다.”
영화 《헌트》의 한 장면ⓒ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연기자와 감독, 느끼는 희열은 다를 것 같다.
“사실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영화는 공동 작업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재미는 있더라. 연기만 해온 터라 후반 작업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사운드 믹싱, 음악 작업, 색 보정까지 하다 보니 새롭고 흥미로웠다.”
오랜 친구 정우성씨가 주연을 맡았다.
“우성씨는 워낙 잘생기고 멋진 사람이다. 그 얼굴이 어디 가겠나. 누가 찍어도 멋있게 나온다. 그럼에도 그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행동이 멋있어야 더 멋있게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캐릭터의 신념, 목적들이 건강해 보여야 된다. 어떻게 하면 정우성씨의 생각과 마음이 멋있게 보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
배경을 1980년대로 잡은 이유도 궁금하다. 짐작하건대 배우 출신 감독 중에서는 가장 스케일이 큰 영화가 아닌가 싶다.
“예전에 미술하는 작가님과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분이 “결국 작품을 하는 데 있어 소재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소재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말인데 그 말이 기억에 남더라. 물론 1980년대라는 배경에 부담을 느낀 것도 맞다. 현대로 바꿀까 하는 생각도 했다. 결국 주제를 잡아가는 데 오래 걸렸다. ‘우리가 왜 이렇게 반으로 나눠져서 대립하고 갈등할까. 그와 관련된 뉴스를 접하다 보면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이념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념 전쟁이 치열했던 때가 1980년대가 아닌가. 그래서 과감하게 1980년대로 배경을 잡았다. 덕분에 제작비용이 많이 든 것도 맞다. 고맙게도 신인 감독임에도 많은 제작비를 허락해 주셨다.”
《오징어 게임》 이후 개봉하는 영화다. 하필 연출작이다. 부담은 없었나?
“《오징어 게임》 때문에 부담이 됐다기보다는, 제가 그래도 한 30년 연기 생활을 잘하고 있지 않았나. 굳이 이런 이야기를 써서 내 커리어를 망치는 게 아닌가 하는 공포는 여러분들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였다(웃음). 쓰면 쓸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덧붙여 너무 고생을 했다. 이렇게 공정이 복잡하고 많은지도 몰랐다. 그것을 스케줄 안에서 잘 해내야 된다는 연출자로서의 압박감이 이 정도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만나는 감독님들에게 ‘시키는 대로 다 잘하겠다’고 말하고 있다(웃음).”
연출 스타일 등등에서 영향을 받은 감독은 누군가?
“배창호·김성수·이재용·장재현·황동혁 감독 등등 너무 많다.”
각색부터 후반 작업까지 길고 긴 여정을 끝냈다.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나.
“많은 분이 정우성과 이정재가 나오는 영화에 대한 기대가 많았던 것 같다. 실제로 그런 리뷰가 많았고, 그래서 더 좋았다. 얼마 전에 우성씨와 밥을 먹는 자리에서도 그런 얘기를 지나가듯이 했다. ‘우리가 허투루 살진 않았구나’ 하고. 그동안 배우로서 현장에서 최선을 다했고, 작품을 선택하는 데도 고민을 많이 해왔다. 좋은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어서다.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달된 것 같아서 기쁘다.”
감독으로서 다음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건가?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없다고 말씀을 드리곤 한다. 자꾸 말하게 되는데, 너무 힘들었다. 하하. 행여 이 영화가 대박이 난다 해도, 힘들었던 기억이 현재는 머릿속에 꽉 차있다. 하지만 또 어떤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서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면, 그래서 그 시나리오가 완성도 있게 나온다면 연출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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