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의 트렌드가 된 연애 리얼리티의 두 갈래 길
최근 예능의 트렌드는 단연 연애 리얼리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갈래가 엿보인다. 자극적으로 흐르거나 혹은 과몰입을 유발하는 설렘을 주거나.
(왼쪽)넷플릭스 예능 《솔로지옥》 포스터, 채널A 예능 《하트시그널3》 포스터ⓒ넷플릭스·채널A 제공
봇물 터진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바야흐로 연애 리얼리티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최근 방영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의 양만 봐도 그렇다. SBS 플러스 《나는 솔로》, iHQ 《에덴》, 카카오TV 《체인지데이즈2》, 채널S 《나대지마 심장아》,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2》, MBN 《돌싱글즈3》, KBS 《이별도 리콜이 되나요?》, 웨이브 오리지널 《남의 연애》 《메리퀴어》, SBS 《연애는 직진》, tvN 《각자의 본능대로》 등. 물론 너무 많아서인지 혹은 방영 채널이 케이블부터 OTT까지 다양해서인지 주목받는 연애 리얼리티는 많지 않다.
연애 리얼리티쇼의 등장에는 일종의 계보 같은 게 있다. 연애를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과거 《사랑의 스튜디오》(1994~2001)부터, 2000년대 들어 붐이 일었던 《동거동락》(2001), 《천생연분》(2002), 《산장미팅-장미의 전쟁》(2003), 《리얼 로망스 연애편지》(2006) 등 이른바 ‘스타 짝짓기 프로그램’들로 이어졌고, 2011년 드디어 일반인들의 연애 리얼리티를 표방한 《짝》(2011~14)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즉 《짝》 이전에는 연애를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있었지만, 그 프로그램들을 ‘리얼리티쇼’라고 보긴 어려웠다. 하지만 《짝》이 열어젖힌 건 ‘일반인 출연 연애 리얼리티’라는 판도라의 상자였다. 이 흐름은 한국 예능가에 리얼리티쇼가 도입되는 과정과 맞물려 있는데, 이른바 ‘관찰카메라’라는 우회적 표현으로 연예인 가족 관찰카메라부터 시작해 최근의 일반인 리얼리티쇼로 넘어오는 과정이 그것이다. 일반인 리얼리티쇼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소구될 수 있는 소재가 다름 아닌 ‘연애’였고, 그래서 지금의 ‘연애 리얼리티쇼’의 시대가 열린 것.
프로그램마다 조금씩 소재도 방향성도 다르지만, 부박하게 두 개의 갈래로 나누어 보자면 현재 연애 리얼리티는 자극과 설렘, 그 양방향으로 나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티빙 오리지널 예능 《환승연애》가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들을 들여다보며 과몰입과 설렘을 추구하는 연애 리얼리티쇼의 한 갈래라면, 최근 침대까지 들여다보는 선정성으로 숱한 논란과 구설 속에 종영한 iHQ 《에덴》은 자극을 추구하는 갈래다.
TVING 예능 《환승연애2》의 한 장면ⓒTVING 제공
《환승연애》와 《에덴》이 보인 연애 리얼리티의 두 경향
어찌 보면 《환승연애》는 《짝》을 종영하게 만들었던 비극적인 자살 사건 이후 침체기에 들었던 연애 리얼리티를 다시 부활시켰던 채널A 《하트시그널》의 변주된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트시그널》은 《짝》의 비극이 생겼던 자극적인 리얼리티를 훌쩍 벗어나 거의 멜로 드라마에 가까운 판타지로 재구성된 연애 리얼리티를 선보였다. 출연자들부터 거의 준연예인급으로 구성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시청자들을 과몰입하게 만들었다. 《환승연애》 역시 준연예인급 외모를 가진 남녀들이 한 공간에서 일정 기간 동안 지내는 내용을 담았지만, 그들이 헤어진 커플들이라는 하나의 다른 설정으로 독특하고 차별적인 스토리를 그려냈다. 마치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견우(차태현)가 그녀(전지현)와 헤어지면서 “술은 절대 세 잔 이상 먹이면 안 되구요” 같은 대사를 던지는 상황이 연출됐다. 옛 연인도 함께 있지만 새로운 인연도 있는 상황. 새로운 인연을 만날 것인가 아니면 헤어졌던 옛 연인과 다시 만날 것인가를 갈등하는 이야기가 독특한 감정의 파고를 만들어냈다.
반면 《에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으로 만들어져 글로벌한 성공을 거뒀던 《솔로지옥》에서 자극적인 부분들을 강화한 형태의 연애 리얼리티였다. 즉 《솔로지옥》은 섬에서 생활하는 남녀가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섹스 어필하는 적당한 선정성까지 동원해 담아낸 연애 리얼리티였다. 《솔로지옥》은 그렇다고 자극으로만 치달았던 건 아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남녀 간 설렘과 안타까움 같은 감정들도 섬세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덴》은 달랐다. 등장부터 살색 가득한 수영복 차림으로 첫 만남을 가졌고, 곧바로 스킨십이 생겨나는 게임을 했다. 잠자리도 꼭 남녀가 함께 잠을 자야 하는 룰을 세웠고, 그중에는 혼성 3인이 함께 자는 상황도 만들었다. 물론 프로그램은 그것 역시 ‘베드 데이트’라고 말했지만, 그 설정 자체는 자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커플 중에는 한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광경이 드러났다. 침대까지 들여다보는 연애 리얼리티가 실제로 구현된 것이다.
iHQ 예능 《에덴》 포스터ⓒiHQ 제공
자극이 셀까, 설렘이 셀까
그렇다면 이 자극과 설렘 중 어느 방향성을 가진 연애 리얼리티가 더 힘을 발휘했을까. 결과로만 보면 《환승연애》의 승리다. 물론 《에덴》 역시 초반까지만 해도 화제성이 급상승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극적인 설정으로 인해 생겨난 노이즈가 만든 화제성이었다. 출연자 중에는 과거 폭행 전과를 가진 인물도 있었는데 프로그램은 심지어 이 인물에 대한 논란까지 화제로 삼는 대담함을 보여줬다. 하지만 자극적인 설정은 초반에는 시선을 끌었지만 갈수록 시들해졌다. 서구의 연애 리얼리티쇼가 가진 자극에 대한 기대감과 달리, 우리네 대중에게는 연애 감정이 주는 설렘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환승연애》는 애초 헤어진 연인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인연을 찾아간다는 설정 자체가 자극적으로 느껴졌지만, 실제 방송은 마치 가슴을 후벼 파는 한 편의 멜로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감성적인 면면을 드러냈다. 출연자들이 전 연인에게 갖는 감정은 복합적이지만, 그래서 흔들리고 아파하면서도 애써 웃으려 하는 그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내려는 제작진의 의지가 엿보였다. 여기에 누가 과연 누구의 전 연인인가를 추리하는 요소까지 더해지면서 시청자들은 더 깊게 프로그램에 몰입할 수 있었다. 시즌1은 그렇게 티빙이라는 OTT에서 가장 큰 성공사례로 일컬어졌고, 시즌2도 그 아우라를 그대로 이어 보여줬다.
그런데 연애 리얼리티에서 현재 설렘이라는 방향성이 더욱 힘을 발휘하는 건, 아직까지 자극의 선정성이 서구의 그것처럼 강도 높게 펼쳐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막 문이 열린 연애 리얼리티는 아직까지 더 강도 높은 선정성을 수용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나가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 과도기적인 상황은 오히려 섬세한 감수성으로 설렘을 강조하는 지극히 한국적인 연애 리얼리티의 신세계가 만들어진 중요한 이유가 됐다.
이미 OTT 시대로 들어온 만큼, 이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연애 리얼리티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선택적으로 보는 플랫폼이니만큼 그런 연애 리얼리티의 등장을 막을 수 있는 명분도 없어졌다. 다만 어느 쪽이 국내는 물론이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는 고민해볼 문제다. 《솔로지옥》이 자극과 설렘의 균형을 맞춘 그 지점을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보편적으로는 자극적인 요소들을 유인 요소로 가져가면서도 동시에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감성적인 부분들을 더해 준다면 충분히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국식 연애 리얼리티가 통용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예능은 우리 역시 전 세계적인 흐름인 리얼리티 경향으로 접어들었다. 되돌릴 수 없는 이 흐름 속에서 우리만이 가진 차별적인 경쟁력이 무엇인지 이제는 생각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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