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기의 뒤안길에서 건져 올린 고갱이

에세이로 찾아온 김진명의 울림
《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

한 권의 에세이집에서 한 편의 가슴 울리는 글만 만나도 독자는 그 책을 읽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소설가 김진명의 신작 에세이집에 수록된 ‘어머니의 믹서’도 어떤 이들에게는 그럴 것이다. 다른 집에서 보기 힘든 믹서기, 그리고 미대생이 쓸 만한 화구세트를 아들에게 안겨준 아버지와의 추억. 그런데 그 드문 전자제품과 학용품이 알고 보니 남에게 기죽지 않게 하기 위해 아버지가 마지막 일원짜리까지 털어서 산 알량한 자존심이었다는 작가의 경험담은 독자에게도 많은 생각을 안긴다. 가난한 아내와 아들이 남에게 괄시받지 않도록 남긴 배려일 수 있다는 것은 이 시대뿐만 아니라 영원히 가족을 꾸리는 가장들이 느끼는 비애이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말하듯 작가는 슬픔과 비극을 외면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 이 책을 시작했다. “상대가 가슴속에 품고 있는 안타까움이 무엇인지, 어떤 대화를 나누어야 할지에 대한 사려가 실종되고 있다. 그 배려와 진지함이 사라진 공간을 매끄럽고 과시적인 대화들이 메우고 있다…어떤 진지한 공감도 애정도 없는 일상을 겪으며 우리 사회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김진명 지음│이타북스 펴냄│284쪽│1만6000원

이번 에세이집은 그가 소설 창작의 과정에서 흘러가는 이야기 중에서 진지하게 생긴 부산물 가운데 가장 큰 정수를 뽑고, 일상에서 남긴 인상적인 것들을 글로 옮겼다. 가장 애잔한 것은 장모는 물론이고 아내, 아이들과의 느낌을 적은 글들이다. 작가는 살아가는 동안 느끼고 겪은 바를 다섯 가지 갈래로 엮었다.

두 번째 장의 시작은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옥중에 있는 아들에게 남긴 처연한 편지다.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하라는 말을 남기는 어머니의 소회를 작가는 짧은 글로 표현한다.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자식에게 나라를 지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라는 어머니가 있는 한, 이 땅은 영원하리라는 확신을 준다. 더불어 파산을 피할 돈을 구하지 못해 고향 집에 내려갔을 때 아들을 달래는 친구 어머니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현재 저자가 충북 제천에서 집필하는 《고구려》와 관련된 이야기도 눈에 띈다. 광개토대왕릉비에 관한 5편의 글이다.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이 유래된 과정도, 그것이 뒤바뀌는 과정을 따로 기록한 것도 역사적 기록이 갖는 가치에 관해 말하고 싶은 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10권으로 기획된 《고구려》의 집필을 통해 잃어가는 한국의 웅혼한 가치를 찾기 위함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그간 작가는 근대사는 물론이고 고대사의 중요한 변곡점들을 선택해 소설의 소재로 사용, 독자들에게 역사를 리터러시(분석적 읽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작가는 얼핏 지루하게 들릴 수도 있는, 그러나 우리 삶을 지탱하는 진리와도 같은 말을 흥미로우면서도 의미 있는 일화들에 녹여 넣는다. 친근하고 흥미롭게 독자를 생각의 길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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