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의 시간 지나 자신을 관조한 유창선의 《나를 찾는 시간》
나이가 들면서 자신을 관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소노 아야코나 김형석의 글들은 그런 심상을 잘 표현해 많은 애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나이보다 강렬한 인생의 경험은 죽음의 문턱을 가본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사형장의 기억은 문학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평론계에서 유창선의 존재감은 크다. 종편이 나오기 전부터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를 해설했다. 선한 의미로서 정치든, 치열한 투쟁으로서 정치든 그는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3년 반 전 뇌종양 수술과 후유증으로 긴 시간을 보냈다. 그 후 가장 두드러진 활동은 글이다. 투병 전에 인문학에 관해 쓴 저서가 있지만, 투병 이후에는 삶에 대한 이야기로 찾아왔고, 이번에도 ‘나이 든다는 것은 생각만큼 슬프지 않다’는 부제가 담긴 책으로 찾아왔다.
나를 찾는 시간│유창선 지음│새빛 펴냄│240쪽│1만6000원
책은 저자의 인생 경험으로 시작한다. 진보 쪽에서 정치를 시작해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기까지 비교적 큰 목청을 냈지만, 정작 당선된 후에는 직선적인 이야기를 했고, 그로 인해 진보에조차 미운털이 박혔다. 당연히 버젓한 진행자 자리를 얻기보다는 경계인처럼 지내야 했다. 그렇지만 그는 정치평론가로서의 길을 항상 고민했다. 정치권 영입 기회도 있고, 대선 캠프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그런 길을 선택하기보다는 객관적 시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그에게 2019년 뇌종양이 찾아왔고, 수술과 그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병마가 지나간 후 그에게 또렷해진 것은 삶에 대한 성찰이다. 프롤로그에 썼듯이 자기 외부의 누구에게 떠밀리지 않고, 오롯이 자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의 가치를 얻은 것이다. 아울러 주변에 대한 사랑의 마음도 깊어졌다.
“우리들이 각자 담아놓은 버킷리스트 가운데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을 소중한 것은 ‘가족과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기’가 아닐까. 내가 죽는 순간 곁에 있을 사람은 결국은 가족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관계 속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지는 우리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면 자명해진다.”
아울러 투병의 시간을 거치면서 달라진 세상과 인간에 대한 시선, 세상에서 한발 물러서고 나니 고즈넉하고 평온한 삶이 열리더라는 경험, 그러니 동네 아저씨가 되어 나이 들어가는 것이 생각만큼 나쁘지 않더라는 얘기들이 잔잔한 문장 속에 담겨 있다. 작가는 1960년생으로 만 60세를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제 인생 노년에 대한 마음가짐을 책에 많이 담고 있다. 가장 자주 나오는 이야기가 ‘고집 버리기’다.
“대개 인간은 젊은 시절에는 뜨거운 정념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합리적 이성과 균형의 사고를 가진 모습으로 성장하고 진화한다. 그러다가 늙어가기 시작하면서 자기 고집이 세지는 사람으로 흔히 퇴행하기도 한다. 우리를 늙게 만드는 것은 나이의 숫자보다도, 소통의 문을 닫아버리고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는 마음의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향한 여러 이야기에 귀를 열고 들으려 하는 사람은 쉽게 늙지 않는다.” 아직도 여러 후유증으로 몸의 불편함을 겪고 있는 저자가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며 감사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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