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없어 폐·심장 수술을 못 받는다

전문의·전공의 감소로 숨넘어가는 흉부외과 
“국가 차원의 제도적 개선 필요”

국내에서 심장·폐암의 심각한 환자가 발생해도 수술을 받지 못할 수 있는 상황이 닥쳤다. 흉부외과 의사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이하 흉부외과학회)가 발표한 ‘연도별 흉부외과 전문의 배출 현황’을 보면 2017년 29명, 2018년 22명, 2019년 21명, 2020년 21명, 2021년 20명으로 꾸준히 줄어들었다. 1993년 57명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반면에 정년퇴직하는 의사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올해 24명, 2023년 30명이 퇴직을 앞두고 있으며 2026년부터는 50명대로 껑충 뛴다. 흉부외과학회에 등록된 흉부외과 전문의는 2022년 기준 1535명이다. 이 가운데 진료활동을 하는 65세 미만은 1161명이며 이들 중 60%는 50세 이상으로 전형적인 고령화 구조다. 당장 2024년부터 배출되는 흉부외과 전문의(21명)보다 은퇴하는 전문의(32명) 수가 많아진다. 2025년에는 배출 전문의(19명)와 은퇴 전문의(33명)의 간격은 더 벌어진다.

흉부외과학회 관계자는 “현재 활동 중인 흉부외과 전문의 1161명의 37.5%(436명)가 10년 내에 정년퇴직한다. 이런 추세라면 10년 내 활동하는 전문의 수는 1000명 미만으로 감소한다. 이는 흉부외과 전문의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9년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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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병원에 전공의 지원 미달 현상

흉부외과는 심장·폐·대동맥·혈관 질환을 수술로 치료하는 진료과목이다. 성인 심혈관(대동맥·관상동맥·심장이식 등), 소아 심장(선천성 심장병), 일반 흉부(폐암·식도암·폐 이식 등), 중환자(에크모 치료 등), 외상 등 5가지 진료 분야를 다룬다.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는 심장과 폐 기능이 떨어진 중환자를 치료해 사망자를 줄이는 역할도 했다.

이처럼 생명과 직결되는 질환을 담당하는 흉부외과 전문의 수가 점차 감소하는 배경에는 전공의 부족 문제가 있다.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1990년대만 해도 한 해 30~50명대이던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가 2000년대 들어 30명대로 감소했고 2010년부터는 20명대로 주저앉았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2018년 공개한 전공의 평균 연봉은 약 4000만원이다. 이보다 두 배를 준다고 해도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는 거의 없다시피 한 실정이다. 2022년 주요 대학병원의 흉부외과 지원 현황을 보면, 서울아산병원은 정원 4명 가운데 지원자는 3명이었고, 가톨릭병원도 정원 5명 중 지원자는 1명이었다. 삼성서울병원은 정원 4명 중 지원자가 1명이었으며, 세브란스병원은 정원 4명에 1명의 지원자도 없었다. 서울대병원은 정원 4명에 지원자 4명으로 겨우 미달 사태를 피했다. 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1~4년 차 전공의가 모두 있는 대학병원은 전국에서 5개 병원(서울대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전남대병원·부산대병원)뿐이다.

지방 병원의 흉부외과 현실은 더 참혹하다. 시쳇말로 전공의 씨가 말랐다. 흉부외과학회가 2021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국에서 활동 중인 전공의 102명 중 약 70%에 해당하는 69명이 서울과 경기도에 몰려 있다. 비수도권 가운데 흉부외과 전공의가 가장 많다는 대구도 8명으로, 10명이 안 된다. 경북·전남·전북·충북에는 흉부외과 전공의가 1명도 없다.

더 큰 문제는 흉부외과 의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진료 수요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사망 원인 1·2위가 흉부외과 질환인 암 또는 순환기 질환이다. 수술 건수도 꾸준히 증가했다. 2011년 대비 2020년 개심술(흉부를 절개해 심장 근육·판막·동맥을 치료하는 수술)은 33.8%, 폐엽절제술(일종의 폐암 수술)은 74.7% 증가했다.

의사의 업무 부담은 환자 치료에도 위험

적은 의사 수로 증가한 진료 수요를 담당하다 보니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흉부외과학회가 2019년 흉부외과 전문의를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주 5일 근무시간은 약 63.5시간(하루 약 12시간)으로 나타났다. 1개월 평균 당직 일수는 5일이고, 병원 외 대기 일도 10일이다. 주말과 휴일에도 편히 쉴 수 없는 상황이다. 김경환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이사장)는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기존 인력이 당직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휴식 없는 당직이 이어지면서 번아웃 현상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번아웃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번아웃을 경험한 흉부외과 전문의는 51.7%로 집계됐고, 번아웃이 환자 진료에 위해가 될 수 있다는 응답이 약 93%를 차지했다.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TV 드라마에서 흉부외과 전공의가 수술 도중 선 채로 잠이 드는 장면이 현실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셈이다.

정의석 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위원장)는 “흉부외과는 주로 수술적 치료를 하는데 의대 입학부터 전문의까지 10년 이상 걸리고, 또 전문의가 돼서도 자신이 주도하는 수술을 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업무 강도도 높다. 나는 일주일에 2~3회 수술하면서 밤을 새우고 다음 날 또 진료를 보는데, 지난해 280일을 병원에서 보냈다. 가정이 무너지거나 개인이 다칠 위험이 큰 생활의 연속이 흉부외과 의사들의 삶이다. 사정이 이런데 누가 흉부외과 전공의가 되려고 하겠나. 그마저 흉부외과 전공의의 절반은 힘들어서 도중에 포기한다”며 한숨을 토해 냈다.

비수도권의 현실은 더 열악

폐나 심장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늘어나는데 수술할 의사가 줄어듦에 따라 일부 지역에서는 의료 공백이 불가피하다. 예를 들어 대동맥 박리증(대동맥 혈관 내부에 파열로 인해 혈관 벽이 찢어지는 질환)은 응급으로 수술하지 않으면 24시간 이내 사망률이 약 25%, 1주 이내는 약 50%인 응급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9년 대동맥 박리증 수술 건수 1623건 가운데 1104건이 수도권(서울·경기)에서 시행됐다. 비수도권 가운데 이 수술 건수가 가장 많은 대구에서도 94건이며 경북·충북·제주 등지에서는 각 2건씩만 시행됐다.

일반 수술도 마찬가지다. 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흉부외과 수술 중 가장 많이 시행하는 폐엽절제술은 2020년 시행된 7886건 가운데 5611건이 수도권에서 이뤄졌다. 이에 비해 비수도권의 폐엽절제술 건수는 경북 6건, 제주 23건 등 미미한 수준이다. 심장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개심술도 2020년 수도권에서 6206건 시행됐는데, 비수도권(경북 7건, 충북 13건, 전남 36건, 제주 21건 등)과 큰 차이를 보였다.

소아 심장병 수술 상황은 더 심각하다. 가장 흔한 선천성 소아 심장병인 심실중격결손(좌심실과 우심실 사이의 중간 벽에 구멍이 있는 질환) 수술 건수는 2020년 기준 781건인데, 이 가운데 수도권에서 667건이 시행됐다. 울산·강원·충북·충남·전북·경북·제주에서는 단 1건의 수술도 없었다. 이들 지역에 사는 어린이 환자가 그 지역에서 수술받지 못한 셈이다.

정의석 교수는 “소아 심장 수술 전문의는 전국에 25명밖에 없다. 5년 이내에 은퇴하는 의사를 제외하면 20명 미만이 된다. 제주에 심장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은 2곳이 있다. 그런데 심장 전문의가 출장이나 휴가 등으로 자리를 비우면 환자는 수술받지 못한다. 이런 환자가 수술받기 위해 서울로 가려 해도 비행기에 태워주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 수도권에 있는 병원에 간다고 해도 수술 대기 환자가 많아 차례를 기다리다 사망하는 사례가 나온다. 소아 심장 분야에서 이미 시작된 흉부외과 붕괴는 앞으로 국내에서 폐·심장 수술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위급한 환자를 치료하는 흉부외과가 오히려 숨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흉부외과 전문의·전공의 부족 현상은 의사의 번아웃과 지방의 의료 공백으로 이어지고, 이는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김경환 교수는 “이미 현 문제에 대해 정부 측에 의견을 충분히 전했다. 흉부외과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흉부외과만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의료 근간에 대한 문제이니만큼 이제는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국가적 차원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의석 교수는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정부가 병원에 중환자실을 늘리라고 해서 인력과 시설이 배치됐다. 이처럼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예컨대 큰 병원마다 상급종합병원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갖추려고 노력한다. 이 조건에 흉부외과 교수 몇 명 이상, 심장 수술 몇 건 이상 등을 넣으면 병원이 투자할 것이다. 이런 제도적 개선은 의사 개인이나 학회 차원에서 할 수 없다.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와 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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