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이 영화를 흠모하겠다는 결심,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이 만든 또 하나의 마스터피스
영화 《헤어질 결심》

사랑한다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 곡진한 멜로, 파격 대신 애수를 가득 채워넣은 박찬욱 감독 세계의 우아하고 새로운 경지. 《헤어질 결심》은 상업영화로서의 재미와 작가적 개성 모두를 성취한 결과물이다. 한 예술가의 도취적이고 난해한 결과물이 아닌, 영화의 미학을 최대한으로 정성껏 구현해 대중에게 건네는 손짓이다.

형사 해준(박해일)은 산 정상에서 추락한 남자의 변사 사건을 맡는다. 사망자의 중국인 아내 서래(탕웨이)는 이상하리만큼 침착하다. 용의선상에 오른 서래를 파악하기 위한 신문과 수사를 진행할수록 해준은 서래를 향한 관심이 커져만 간다. 서래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 것 같고, 오히려 해준을 대하는 데 별다른 망설임 없이 과감한 면이 있다. 두 사람의 마음은 의심과 관심 사이의 어딘가에서 오간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CJ ENM 제공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CJ ENM 제공

산꼭대기에서 만조의 바닷가까지

《헤어질 결심》은 정확한 감정을 제시하는 대신 불분명하고 모호한 길을 간다. 마치 그것만이 멜로의 핵심이라는 해석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가 그리는 것은 서로 정답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닌, 연속한 어긋남 끝에 한껏 구겨진 사람의 초상이다. 직접적인 단어는 주고받은 적이 없지만, 온 얼굴과 마음이 사랑을 향하고 있었기에 결국 붕괴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다. 봉합의 완결이 아닌 영원성을 품은 미결로서의 사랑. 애수와 회한은 안개처럼 자욱하게 영화를 감싼다.

구조적으로 이 영화의 시선은 해준의 것이지만, 경로 자체는 서래의 마음을 따라가도록 설계돼 있다. 마치 작품 전체가 수사의 과정 같다. 자신의 것뿐 아니라 해준의 태도와 감정까지 먼저 읽고 행동하는 쪽은 서래이며, 서래가 남긴 사건과 감정의 흔적을 짚어 따라가보는 것이 해준의 몫으로 남는다. 해준이 서래를 관찰하며 파악하는 동안 영화는 해준이 어떤 사람인지 명료하게 제시한다. 그는 직업적 자부심이 남다른 사람이다. 죽은 사람의 경로를 고지식하리만큼 그대로 따라가보려는 집요함이 있고, 낭만 없는 결혼생활에도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남자. 달리 말하면 그것은 해준이 지키고자 하는 품위다.

해준은 남편의 죽음을 ‘말씀’으로 듣는 대신 사진을 보고 확인하겠다는 서래가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임을 직관적으로 알아본다. 해준이 수년을 매달린 ‘질곡동 사건’의 핵심이 사랑이라는 감정과 얽혀있을 것임을 간파한 이 역시 서래다. 두 사람은 기질적으로 닮은 구석이 많다. 하지만 관계의 폭을 좁히기란 쉽지 않다. 서래는 타국에서 온 이방인이자 이제 막 남편을 잃은 미망인이다. 해준은 지금껏 일에서나 결혼생활에서나 도덕적이고 깔끔한 태도를 지켜온 사람이다.

산꼭대기에서 시작해 만조의 바닷가에 이르는 이동은 물리적인 공간의 동선인 한편, 인물들의 심리적 동선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가는 동안 해준은 서래를 향한 의심과 애정으로 인해 똑바로 직시해야 할 것을 놓쳤다는 자괴감으로 무너져 내린다. 그의 입장에서는 품위를 손상한 것이다. 서래는 그런 해준을 사랑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자신이 미결 사건이 되기를 택한다. 내 시작과 당신의 시작이 같지 않다는 얄궂은 비극 역시 이들을 에워싼다. 두 사람의 발걸음이 필연적으로 사랑의 지속이 아닌 헤어질 결심을 향해 가는 이유다.

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CJ ENM 제공

시네마의 미학과 본질을 추구하다

곱씹을수록 탁월한 제목은 이중성을 지닌다. 결심이라는 단어에는 가까운 미래를 향한 비장함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헤어짐을 결심하는 것은 무용하다. 주체가 오직 나뿐일 때와는 다르게 관계 안에서 홀로 세우는 모든 결심은 어쩔 수 없는 반쪽짜리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내 마음을 알맞게 재단해 원하는 자리에 가져다 놓는 자체가 불가능한 시작이었지만 헤어짐은 그게 가능할 거라고 믿는 사람의 것이라 해도, 혹은 끝을 내야만 하기에 괴로운 사람의 것이라 해도 슬픈 결심으로 느껴지긴 마찬가지다.

한편으로 이 제목은 상대가 아니라 그를 만나기 이전의 나 자신과 헤어질 결심을 하는 사람의 감정처럼 느껴지는 측면도 있다. 이전까지 단단하게 쌓아올렸던 나의 세계가 무너지더라도 당신이라는 변화를 받아들이겠다는 각오. 진작 이것을 알아차렸으며 “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라는 서래와는 달리 “우리 일 무슨 일이오?”라고 대답하는 해준은 가여운 사람이다. 되묻는 첫마디와는 달리 그는 곧바로 ‘우리 일’을 말로 쏟아내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는 이전의 자기 자신으로 영영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는 함께 작업해온 그간의 작품 안에서 언어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탐색해 왔다. 서로 다른 언어의 이질성을 유희하고 실험한 《아가씨》(2016)가 대표적이다. 《헤어질 결심》에서 한국어와 중국어는 관계의 비극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흥미로운 멜로의 장치로 쓰인다. 고전 사극과 드라마를 통해 한국어를 배운 서래의 범상치 않은 표현들은 해준으로 하여금 말을 곱씹게 하고,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 번역을 통해 얼마간의 시차가 발생한 서로의 말들은 뒤늦은 마음을 부추긴다. 마침내, 붕괴, 단일한 같은 단어의 적절하고도 유려한 활용 역시 작품의 격을 만든다.

말이 부딪치며 발생하는 공백을 채워넣는 것은 감각 묘사다. 자신의 숨소리에 규칙적으로 숨을 맞추며 잠이 들라는 서래의 주문, 취조실에서 서래가 손에 뿌리고 온 향수의 향을 음미하는 해준의 표정 등은 적나라한 성애의 장면보다 훨씬 섬세한 방식으로 오감을 자극한다.

연기, 촬영, 미술, 사운드 등 모든 것이 어우러진 영상 예술의 미학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시네마의 본질에 가까이 선 작품이기도 하다. 알프레드 히치콕, 클로드 샤브롤의 작품 등 여러 레퍼런스가 떠오르는 이유는 이 영화가 독창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만큼 다양한 결의 시네마틱한 순간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라는 건, 비단 블록버스터뿐만이 아니라 이런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다.

《박쥐》와 《아가씨》 그리고 《헤어질 결심》

《헤어질 결심》에서는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기존 영화의 이미지들이 흥미롭게 겹친다. 극 중 중요한 모티프인 서래의 청록색 드레스는 《박쥐》(2009)의 태주(김옥빈)를 연상시킨다. 인물들이 만조의 바닷가에서 맞이하는 엔딩의 여운 역시 《박쥐》를 떠오르게 하는 측면이 있다. 폭력적인 세계에 놓인 여성에게 나타난 구원자라는 설정은 《아가씨》와 연결점을 갖는다. 구강 DNA를 추출하는 서래의 얼굴에서는 쇠골무를 낀 숙희(김태리)에게 어금니 가는 것을 맡기던 히데코(김민희)의 나른한 표정이 구체적으로 감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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