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벼보고, 옆길로도 새보고, 결국 알면 사랑한다”

세계적 생태학자가 걸어온 길을 담은 《최재천의 공부》

당대 우리나라에서 꼽히는 공부의 구루가 있다. 동서양 경계를 넘나들며 지식을 확장하는 도올 김용옥이나 게릴라 공부꾼들을 모아 ‘감미당’을 꾸리는 고미숙, ‘공부의 신’으로 불리는 강성태 등이 생각난다. 이 계보에 확실히 올라갈 책이 출간됐다. 생태학자 최재천의 공부에 관한 생각을 담은 《최재천의 공부》다.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과 최 교수를 통해 이야기되는 공부는 단순한 학습을 넘어선다. 인생의 전반에서 세상의 이치에 트이게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최 교수가 긴 시간의 기획을 통해 완성한 이 책은 생태학자답게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단계를 따른다. 그래서 목차는 뿌리, 시간, 양분, 성장, 변화, 활력이라는 도구로 공부를 설명해 낸다. 책의 전반을 흐르는 기조는 공부가 단순히 한 분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덤벼보고, 깊이 파보고, 옆길로 새보고, 악착같이 찾아보고, 결국 알면 사랑한다”는 가치를 찾기 위해 외길을 걸어오는 여정을 담담히 보여준다.

최재천의 공부│최재천, 안희경 지음│김영사 펴냄│304쪽│1만6500원

지금은 개미학자로 잘 알려졌지만 최 교수의 연구 대상에는 민벌레가 있다. 파나마에서 몸통 길이 2mm의 민벌레를 찾은 뒤 그걸 기르면서 관찰하는 게 그의 연구 방식이다. 그런데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에 미술을 하던 기억을 살려 민벌레 관찰 도구를 만들어 연구를 해낸다. 이런 경험은 스스로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다는 인생 여정의 지혜를 모은 것이다. 가령 서울대 학부에서는 별스러운 성적을 받지 못했지만, 펜실베이니아주립대와 하버드에서 석박사를 받을 때는 누구보다 탁월한 성적을 내는 학생으로 변모하는 것도 이런 변화의 과정이고, 그 자체는 최 교수가 더 나은 공부 과정을 찾아내는 과정으로 읽힌다.

“아이를 가르쳐서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세상을 보고 습득하도록 어른이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 그것이 바른 교육이다.” 개미 등 생물을 보면서 호기심을 갖게 돼서 성장한 소녀부터 최 교수의 아이까지 억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보여줬다고 한다. 또 토론의 가치도 계속 강조한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대선후보까지 질문을 주고, 충분히 답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성숙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화여대에서 석좌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점수를 안 주기로 유명하지만, 제자들과 질긴 공부 과정을 통해 변화하는 학생들을 보는 재미에 빠져있다.

재미있는 것은 최 교수가 생각보다 엉성한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그는 완벽한 결론을 추구하기보다는 좀 엉성해도 계속 답이 나온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를 위해 그냥 멍 때리는 시간을 가지라고도 말한다. 생활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다른 것에 몰두하느라 두 번이나 아이를 잃어버릴 뻔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이번 책에서 최 교수의 공부법을 끌어낸 이는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다. 안 작가는 촘스키, 재레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적인 지성을 만나면서 세계에 부는 성찰적 기운과 대안 활동에 관한 글을 써왔는데, 이번 계기를 통해 좋은 사례를 만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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