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BTS 예술혁명》 저자
“개인활동 통해 ‘아티스트’로서 다채로움 드러날 것”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그냥 음악이 좋을 뿐이라고, ‘변화’는 많았지만 ‘변함’은 없었다고, 아직도 배울 것과 인생을 채워나갈 것이 많다고, BTS는 새 앨범 ‘PROOF’의 《Yet To Come》을 통해 말했다. 지난 6월 BTS의 ‘2막 선언’은 전 세계를 흔들었다. 일부는 ‘단체활동 중단’ ‘해체’라는 자극적인 단어들로 그들의 메시지를 해석했다. 하지만 BTS의 오랜 고민이 담긴 발언이었다는 것을 아는 ARMY(아미)들은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지지했다. 개인활동을 통해 스스로를 찾으려는 BTS의 결정은, 지금까지 꾸준히 강조했던 메시지인 ‘LOVE YOURSELF(러브 유어셀프)’를 실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렇듯 BTS에 대한 아미의 믿음은 ‘메시지’에서 기인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고 응원하고, 차별과 혐오를 반대하는 BTS의 메시지는 2020년 영국, 2021년 미국에 이어 올해 한국에서 열린 제3회 BTS 국제학술대회에도 반영됐다. BTS의 인기와 한류 현상뿐 아니라 다양성의 가치, 폭력에 대한 저항, 민주주의와 관련된 24개국 아미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발표됐다. 기조발제자로 참석한 이지영 한국외대 세미오시스연구센터 연구교수는 2018년 《BTS 예술혁명》을 출간하면서 ‘BTS 현상’에 대한 연구의 포문을 연 인물이다. 최근 개정판을 발간한 이 교수는 “BTS가 전한 메시지에 감응한 아미들이 정치, 환경,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미 있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것이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BTS만이 아니라 아미도 진지하게 연구하는 이유”라고 했다. BTS의 어떤 메시지가 전 세계의 아미들을 움직이게 한 걸까. 그리고 BTS의 제2막은 BTS에게, 아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BTS 예술혁명》 저자인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는 “BTS가 전한 메시지에 감응한 아미들이 정치, 환경,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미 있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BTS와 아미를 연구하는 학술대회가 ‘BTS의 나라’ 한국에서 열렸다. 영국과 미국을 거쳐 한국에서 행사가 진행됐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나.
“1~2회 컨퍼런스는 영어로 진행됐다. BTS 하면 떠오르는 부분 중 하나가 영어의 지배를 깨뜨리고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이지 않나. 가능한 한 모두가 모국어로 발표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모든 언어를 수용하기는 어려웠지만, 이번 학회에서는 한국어와 일본어 발표, 수어 통역이 진행됐다. 언어의 다양성을 살리고 영어의 중심성을 약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아미들이 힘을 모아주셔서 가능했다. 많은 아미가 와디즈를 통해 행사를 위한 펀딩에 참여해 주셨기에 다양한 언어를 제공하기 위한 동시통역, 그리고 그 과정을 기록에 남기기 위한 아카이빙 작업이 진행될 수 있었다. 아미들의 참여에 감사드린다.”
다양성의 가치, 폭력의 저항성, 민주주의에 대한 아미들의 움직임 등 다양한 연구가 발표됐다. BTS의 영향력과 함께 아미의 영향력도 함께 커지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보나.
“아미는 BTS와 뗄 수 없는 관계다. 함께 성장하고 영향력을 키워가지만 동시에 독립적으로도 발전한다. BTS의 메시지 그대로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메시지를 자신이 해석하며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BTS와 아미의 공통 화두는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다. 하버드대는 75년에 걸쳐 ‘행복의 비결’에 대해 연구했는데 인간관계, 즉 ‘같은 커뮤니티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만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미는 사랑이라는 에너지를 기반으로 관계 혹은 커뮤니티를 구성하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펼쳐 가고 있다.”
BTS는 언제나 ‘많은 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6월 BTS의 ‘2막 선언’은 솔직한 심경 고백이었다. 트위터에는 ‘#방탄의_수고는_아미가_알아’라는 검색어가 뜨기도 했다. 아미들은 BTS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했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배경은 뭔가.
“BTS는 그동안 아미와 활발하게 소통하면서 자신들의 심경을 얘기해 왔다. 이번에도 아미는 BTS의 솔직한 심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다른 소속사의 아티스트가 솔로 앨범을 발매한다면 보통 소속사에서 보도자료를 내고 발표할 것이다. BTS는 자신들의 방식으로 앞으로의 여정을 얘기했다. BTS가 강조하는 가장 큰 메시지는 ‘러브 유어셀프’다. 자기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알아야 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달리다 멈춰도 괜찮다고 얘기한 적도 있다. ‘2막 선언’은 BTS 메시지의 진정성이 증명된 순간이었고, 아미들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학술대회에서도 아이돌 시스템에 대한 분석이 발표됐다. 아티스트로의 영역 확장을 위해 그룹이 아닌 개인의 성장을 장려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었다. 한국 아이돌 산업의 특성에 대해 어떻게 보나. 어떤 개선이 필요할까.
“미국 아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돌 시스템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은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다. 아이돌과 스타들이 엄청난 트레이닝을 거쳐 만들어진다. 서구 미디어는 한국의 아이돌 산업을 비판하며 K팝에 대해 잘못된 프레임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한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어두운 측면을 가지고 있다. 다만 한국 아이돌 산업은 특유의 집단주의적 성격이 산업에 반영돼 다른 나라에 비해 개인의 자유와 성장이 억제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정치인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아이돌에게 요구한다. 여러 특수한 제약에 위축되거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경쟁이 심한 곳에서 데뷔하고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돌보거나 인격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BTS는 데뷔 전부터 상담을 지속적으로 받아왔고, 노래를 통해 자신의 고민을 드러내면서 다른 그룹보다 비교적 건강하게 버텨왔던 케이스다. 회사 차원에서 상담을 지원하는 등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와 시스템을 소속사들이 구비했으면 한다. 아티스트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필요하다. BTS는 단순히 춤만 잘 춰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성공의 본질에는 세상에 대한 이해, 예술적 성장,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있었고 그 메시지가 잘 전달됐기 때문에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7월14일 한국외대에서 열린 제3회 BTS 국제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이지영 교수 ⓒ 시사저널 최준필
아미들이 BTS의 고민을 이전부터 느낄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나. 《Yet To Come》에도 BTS의 심경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번 앨범 외에도 BTS의 메시지가 담긴 노래가 있었나.
“지금까지의 활동도 멋졌지만 같은 방식으로는 지속될 수 없었다. 방식을 바꿔야 하는 부분에 대해 그들은 이미 계획했고, 그동안 고민도 계속 이야기해 왔다. ‘MAP OF THE SOUL: 7’ 앨범에서도 메시지는 전해졌다. 《Black Swan》에는 ‘더는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자신을 몰아치는 순간 열정이 사라지는, 그러면서도 열정을 잃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을 노래를 통해 볼 수 있었다. ‘길 잃은 내 발목을 또 잡아’ ‘몸부림쳐 봐도 사방이 바닥’이라던 심정도 마찬가지다. 《Interlude : Shadow》에도 ‘높게 나는 게 무섭다’ ‘나의 도약은 추락이 될 수 있다’는 가사가 있다. 아마 그게 솔직한 심정이었던 것 같고,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ON》 뮤직비디오는 이전의 세계관과 연결되지 않는 이야기여서 새로운 챕터의 시작인지를 궁금해하는 이가 많았다. 높은 바위로 뛰어오르는 BTS의 모습이 가장 높은 곳에서 찾을 각자의 여러 방향성을 예고했던 건가 싶기도 했다.”
지속 가능한 활동을 펼쳐 가는 아미는 팬덤의 선한 영향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외신은 ‘아미가 팬들의 단순 집합체를 넘어 사회·경제 세력으로 확장됐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아미의 영향력을 끌어낸 BTS의 저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그동안 한국 팬덤 중에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팬덤이 많았지만, 서구의 경우에는 한국과 달리 아티스트의 팬덤이 나서서 사회운동을 하거나 기부를 이어가는 사례가 많지 않았다. 팬덤 연구 측면에서 보면 ‘해리포터 팬덤’ 등이 사회적 참여를 했지만 마이너한 영역이라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해외에서는 아미를 비롯한 K팝 팬덤이 사회운동 등을 리드한 측면이 있다. 아미가 다른 팬덤과 차별화되는 것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지향점이다. ‘우리 아티스트에게 기여하고 싶다’는 틀에서 벗어나, 아미 자신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활동하고 싶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Not Today》 같은 곡은 인도네시아나 홍콩, 미얀마 등의 시위 현장에도 많이 등장했다. BTS의 의도를 넘어 하나의 힘으로 음악이 작용하고 있다. BTS는 사회 비판적 메시지뿐 아니라 자기 성찰 메시지도 같이 낸다. 사회 비판과 자기 성찰이 함께 이뤄지면서 아미의 활동은 더 단단해지고 확장됐다. 내 마음을 움직이고 삶을 움직이면 사회가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미의 뿌리를 깊어지게 했다.”
‘남주닝’이란 단어는 ‘자기 자신으로 남기 위해 하는 일’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BTS는 아미의 단체행동뿐 아니라 개인의 신념과 생활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외에도 아미들이 영향을 받는 BTS의 메시지가 있나.
“미술관 가기, 자전거 타기 등 남준(RM)이 주로 하는 취미활동을 ‘남주닝’이라 불렀는데, 최근에는 자기 자신을 찾는 취미활동을 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확장됐다. BTS의 메시지 중에는 ‘러브 유어셀프’ ‘스피크 유어셀프’가 가장 파급력이 컸다.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는 아미들에게 그 말은 무엇보다 중요한 화두다. 언론을 통해 회자되지는 않았지만 이슈가 있을 때마다 아미들이 끌어오는 트윗이 있는데, ‘Teamwork makes the dream work!’다. 연대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BTS가 올렸던 트윗이다. 저도 굉장히 좋아하는 문장이다. 이번 학술대회를 준비하면서도 ‘함께’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아미는 ‘연대’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새기고 있다.”
BTS는 제2막을 멋지게 시작했고, 솔로 활동에서도 그 저력이 입증되고 있다. 제이홉의 솔로 앨범에 대해서는 새로운 포부와 성장을 다뤘다는 평이 많다. 더욱이 콘셉트, 디자인, 뮤비, 곡 구성 등 전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이들의 개인활동이 ‘아티스트’로서 BTS에게 어떤 의미로 작용할까.
“그동안 제이홉은 자기 생활을 절제하고 개인의 욕망보다 팀을 우선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특성을 보였다. 팀에서는 ‘밝은 희망’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동안 써야 했던 ‘희망의 페르소나’, 즉 ‘BTS 제이홉’으로서의 페르소나를 내려놓고, 그동안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을 끄집어내고 개인으로서의 욕망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멤버들 모두 그런 식으로 팀 속에서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을 드러내면서 예술적으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전할 것이고, 각기 다른 페르소나를 분출한 BTS가 다시 모이면 더 확장된 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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