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 36일 만에 기자회견…‘윤핵관’ 실명 나열하며 작심 비판
“날 ‘XX’라 부른 사람 대통령 만들려고…” 尹대통령도 정면 겨냥
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출범과 지도부 해임 등에 대해 효력 정지 가처분 절차를 밟고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당원권 정지 징계 이후 36일 만에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들을 향해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윤 대통령에 대해 “지도력의 위기”라고 했고, 윤핵관들의 실명을 직접 언급하며 “정당을 경영할 능력도 국가를 경영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윤핵관과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경고를 남기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선전포고에 가까운 내용을 기자회견에 담으면서, 앞으로도 당 내홍 상황이 장기간 지속할 거란 관측이 나온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 대표는 이날 오후 2시 국회 소통관에서 지난 7월 초 당 윤리위의 징계 이후 처음으로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8월7일 SNS를 통해 예고한 대로다. 기자회견이 이뤄지기까지는 약간의 혼선이 있기도 했다. 시간과 장소가 기자회견 직전까지 제대로 공지가 되지 않은 것이다. 극우 유튜버들이 기자회견에 몰려들 것을 우려해 공지가 늦어졌고, 장소도 급하게 변경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담담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이 대표는 먼저 “큰 선거에서 3번 연속으로 우리 국민의 힘을 지지해주신 국민이 다시 보수에 등을 돌리고, 최전선에서 뛰어서 승리에 일조한 당원들이 이제는 자부심보다는 분노를 표출하는 상황을 보면서 많은 자책감을 느낀다”고 사과했다. 이어 이 대표는 자신에 대한 징계 및 해임 절차에 관해 분노를 드러냈다. 그는 “당이 한 사람을 몰아내려고 몇 달 동안 위인설법을 통해 당헌·당규까지 누더기로 만드는 과정은 전혀 공정하지 않았으며, 정치사에 아주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며 “지난 몇 년간 국회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가진 절대적 입법권으로 여러 가지 정책을 무리하게 뜯어고치는 시도를 막아내겠다던 당의 모습이 이제는 사람 하나 잡자고 집단린치에 이어 당헌·당규까지 졸속 개정하는 자기모순 속에 희화화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민심 떠나고 있어…당 위기 아닌 대통령 지도력의 위기”
이어 이 대표는 자신에 대해 ‘내부총질하던 대표’라고 표현한 윤 대통령의 문자메시지를 언급하며 윤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그는 “민심은 떠나고 있다. 대통령이 원내대표에 보낸 어떤 메시지가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그것은 당의 위기가 아니라 대통령의 지도력의 위기”라며 “문제 되는 메시지를 대통령이 보내고 원내대표의 부주의로 그 메시지가 노출됐는데 그들이 내린 결론은 당 대표를 쫓아내는 일사불란한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라면 전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판단”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자신을 향한 윤 대통령의 언행을 폭로하기도 했다. 그는 “대선과 지방선거를 겪는 과정 중에서 어디선가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누차 저를 (윤 대통령이)‘그 XX’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그래도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내가 참아야 한다고 크게 ‘참을 인’ 자를 새기면서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고 목이 쉬라고 외쳤던 기억이 떠오른다”며 “대선 과정 내내 한쪽으로는 저에 대해서 ‘이 XX’ ‘저 XX’하는 사람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 당 대표로서 열심히 뛰어야 했던 제 쓰린 마음이 여러분이 입으로 말하는 선당후사 보다 훨씬 아린 선당후사였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지난 6월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독대 사실을 부인했던 사실을 바로 잡기도 했다. 이 대표는 “대통령실의 발표로는, 대통령은 저를 만나시지 않았지만 저는 대통령께 북한방송 개방에 대한 진언을 독대해서 한 바가 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기자회견 도중 젊은 세대와 호남을 언급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사상 처음 정당이라는 것에 가입했다며 다시는 보수정당이 이미 썩어서 문드러지고 형해화된 껍데기만 남은 반공이데올로기가 아닌 정치과제를 다뤄달라면서 당원 가입화면 캡처 사진을 보내온 수많은 젊은 세대를 생각하면서 마약 같은 행복함에 잠시 빠졌다”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그는 “전라도에서 보수정당에 기대를 하고 민원을 가져오는 도서벽지 주민의 절박한 표정을 보면서 진통제를 맞은 듯 바로 새벽 기차를 타고 심야 고속버스를 탔다”고 말하는 과정에서중간중간 울컥이며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쓰고 왔던마스크로 급히눈물을 닦아내기도 했다.
이어 이 대표는 윤핵관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윤핵관들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권성동, 이철규, 장제원 ‘윤핵관’들, 그리고 정진석, 김정재, 박수영 등 ‘윤핵관 호소인’들은 윤석열 정부가 총선승리를 하는 데에 일조하기 위해 모두 서울 강북지역 또는 수도권 열세지역 출마를 선언하시라. 여러분이 그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절대 오세훈과 맞붙은 정세균, 황교안과 맞붙은 이낙연을 넘어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윤핵관들이 꿈꾸는 세상은 우리 당이 선거에서 이기고 국정동력을 얻어서 가치를 실현하는 방향이 아니다. 그저 본인들이 우세 지역구에서 다시 공천받는 세상을 이상향으로 그리는 것 같다”며 “윤핵관들이 그런 선택(열세 지역구 출마)을 할 리가 만무한 이상 저는 그들과 끝까지 싸울 것이고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방식으로 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준석 대표가 13일 기자회견 도중 젊은세대와 호남을 언급하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 ⓒ시사저널 박은숙
그러면서 이 대표는 자신의 몇 가지 다음 계획을 밝혔다. 그는 “다음 주부터 더 많은 당원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공개하겠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당에서 프로그래머를 고용해 추진하려고 하던 당원 소통공간, 제가 직접 프로그래머로 뛰어들어서 만들어 내겠다. 그리고 지난 한 달여 간 전국을 돌면서 저녁으로는 당원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당의 개혁과 혁신을 위한 방안을 담아내기 위해 써 내려가던 당의 혁신 방향에 관한 책도 이제 탈고를 앞두고 있다”고 알렸다.
“윤핵관들 열세지역 출마하시라”
이 대표는 기자회견이 끝난 뒤로도 약 35분가량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갖고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다만 그는 윤 대통령에 대해선 수위를 조절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이 대표는자신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기각될 가능성과 관련해 언급하며 “기각이 된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면서 “결국에는 윤핵관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정당을 운영할 능력도 국가를 운영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만의 희생양을 찾아서 또다시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을 향해 강한 수위 발언을 했던 것에 대해 “몇 가지 사실관계를 이야기한 것밖에 없다”며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독대 사실 부인과 문자메시지 유출 등을 통해)저에게 어떤 모욕들을 안겨주려고 했는데 사실관계를 밝히는 게 뭐가 문제인가. 그때(문자메시지 유출 사태) 누가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도 사람이다.’ 아무도 대통령이 사람이 아니라고 안 했다.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반문해야 하지 않나. 대통령만 사람이냐. 저도 할 말은 하겠다”고 꼬집었다. 다만 그는 “윤 대통령과 저의 문제는 상당 부분 오해에서 기인했다는 생각이 있다. 그 오해라 함은 중간에 전달하고 상황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자신의 사심 가득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벌어진 사태라는 것도 저는 알고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주호영 비대위원장, 윤 대통령과의 대화 등을 통해 상황이 풀릴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그는 주 비대위원장과 만날 가능성에 대해 “주호영 대표께서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것을 듣지 않는 것이 그리고 저도 어떤 말씀을 드리지 않는 편이 주 대표께도 저에게도 낫겠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먼저 만나자고 하면 만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대통령실에서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고, 어떤 생각인지 명확하게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자질구레한 사안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눌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이날 윤 대통령과 이른바 윤핵관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을 향해 상당히 높은 수위의 비판들을 쏟아내면서 당 내홍 상황은 가처분 판단 등 이후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거란 관측이 나온다. 이 대표의 기자회견과 관련 대통령실은 직접적인 대응을 피하는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언론에 “공식입장을 낼 계획이 없다”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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