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물가에 외식비 급등
하루 지출 확 줄이는 MZ세대 늘어나
지난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3%까지 치솟으면서 소비 행태가 뒤바뀌고 있다. 특히 명품을 구매하며 플렉스(Flex·과시) 문화를 선도했던 MZ세대 사이에서는 일명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하고 있다. 고물가로 인해 지출이 곧 공포로 작용하면서 하루 지출을 최소화하는 젊은 소비층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유통업계도 이에 맞춰 초저가 상품을 전면 배치하며 소비자 공략에 나섰다.
MZ세대 사이에서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하는 배경에는 ‘외식비 상승’이 있다. 고물가가 이어지자 점심을 뜻하는 ‘런치’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이 합쳐진 신조어 ‘런치플레이션’까지 등장했다. 이들은 하루 지출액을 최소화하기 위해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거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한 끼를 때우고 있다.
고물가의 여파가 대학가로 번지며 대학교 학생식당 가격이 오른 가운데 5월24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교 구내식당에서 학생이 메뉴판을 바라보고 있다.ⓒ연합뉴스
‘런치플레이션 공포’ 현실화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3%다. 이는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1월(6.8%)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또 지난달 소비자들이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돼 장바구니 물가로 불리는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7.9% 상승했다. 즉 소비자들의 물가 상승 체감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식물가지수도 전년 동기 대비 8.4% 올라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1992년 10월(8.8%) 이후 29년9개월 만에 가장 큰 오름폭이다. 품목별로는 △갈비탕(11.8%) △짜장면(9.1%) △치킨(8.8%) △피자(8.4%) △설렁탕(8.1%) △해장국(7.4%) 등 순으로 가격이 올랐다. 이 외에도 △김밥(11.1%) △라면(10.5%) △떡볶이(10.5%) 등 직장인이 점심 메뉴로 자주 찾는 분식 가격이 일제히 상승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하루 지출 0원 또는 최소한의 금액으로 하루를 버티는 ‘무지출 챌린지’가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다. 일부 MZ세대는 무지출을 실천하는 날을 정해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는 것을 SNS에 인증한다.
프리랜서 천아무개씨(32)는 “점심, 커피값만 해도 하루 지출이 1만원을 훌쩍 넘어서기 때문에 지난 5월부터 가계부를 작성하고 있다”면서 “프랜차이즈 커피 한 잔이 5000원이라 되도록 저가 커피전문점에서 구매해 마시고 점심도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대신한다”고 전했다. 천씨는 “가계부를 쓰지 않으면 생활비가 감당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직장인 김아무개씨(26)는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고 집에 와서는 배달음식 대신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로 요리해 먹고 있다”며 “도시락을 싸지 못한 날은 편의점 도시락이나 저렴한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하루 최대 1만원, 한 달 최소 10일 이상은 0원 지출을 목표로 삼았다”면서 “블로그 리뷰를 작성해 미용실에 무료로 가거나 제품을 얻는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물가가 오르면서 예전 욜로족, 플렉스 문화 등에 익숙했던 젊은 층도 줄어든 수입, 경제 상황을 체감하고 있다는 의미”라면서 “편의점에서 저렴한 도시락을 찾는 등 현재 가계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경제 책임감을 갖게 됐다고 볼 수 있다. 무지출 챌린지는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런치플레이션 현상이 심화되자 전체 편의점 도시락 매출도 늘고 있다. 편의점 CU에 따르면 지난 7월 전체 도시락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5.8% 증가했다. 같은 기간 GS25 50.4%, 세븐일레븐 40%, 이마트24는 49% 늘었다. 특히 오피스, 대학가 상권 도시락 매출이 급증했다. 지난달 CU의 오피스, 대학가 매출은 각각 35.6%, 39.4% 올랐고 GS25는 오피스 31.6%, 대학가는 36.1% 매출이 뛰었다.
7월5일 서울의 한 편의점에 도시락 등 음식이 진열되어 있다.ⓒ연합뉴스
지출 줄이는 소비자에 맞춰 초저가 제품 급증
소비지출을 적극적으로 줄이는 이들이 늘면서 초저가 제품 판매율도 높아지는 추세다. CU에 따르면 전체 도시락 매출 중 4000원 미만 비중은 지난 7월 11.8% 증가했다. 이는 전년 동기(10.4%) 대비 1.4%포인트 오른 규모다. 또 CU에서 4000원 이상 5000원 미만 도시락 판매 비중은 지난해 65.5%에서 67.3%로 늘어난 반면, 5000원 이상은 24.1%에서 20.9%로 감소했다.
배달 치킨이 2만원을 넘어서자 대형마트들은 가성비를 앞세운 치킨을 속속 내놓고 있다. 이마트는 국내산 9호 닭 냉장육을 사용한 9000원대 ‘5분 치킨’을, 롯데마트는 ‘뉴 한통 가아아득 치킨(치킨 1.5마리 양, 기존가 1만5800원)을 행사 카드 기준 8800원에 한정 판매하고 있다. 홈플러스도 ‘당당치킨’을 6900원에, ‘두마리치킨’을 9900원에 출시했다. 미국계 할인점 코스트코 역시 로티세리 치킨을 6490원에 판매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유통업체 PB(자체 브랜드) 상품도 인기다. 대형마트 PB 상품은 평균 두 자릿수 매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마트 노브랜드 굿모닝 굿밀크는 타 브랜드 대비 40%가량 저렴하다. 지난 6월에만 41만 팩이 팔려 매출 신장률 11.4%를 기록했다. 홈플러스는 올해 2월부터 시작한 ‘물가안정 365’ 상품 판매량이 전년 대비 125% 증가했고, 롯데마트도 PB 상품 매출 신장률이 전년 대비 10% 올랐다.
한 관계자는 “1~2인 가구 증가와 고물가 시대가 맞물려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는 소비 행태가 확산되고 있다”면서 “물가가 안정될 때까지 편의점 도시락과 커피 등의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로 식료품 그리고 노동비용이 포함된 식당 메뉴, 즉 외식값이 크게 올랐다”며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고 자산이 충분하지 않은 젊은 층의 타격이 큰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렴한 소비를 하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는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경기는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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