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세계 1위, 한국 조선산업의 민낯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대우조선해양 파업으로 조선업계 구조적 문제 드러나
51일 만에 파업 갈무리됐지만 리스크는 여전

7월22일 대우조선해양의 파업이 51일 만에 마무리됐다. 최악의 상황을 피한 것은 다행이지만, 갈등은 더 깊어졌다. 파업 배경에는 우리 조선산업이 가진 구조적 문제가 있다. 조선산업은 본사와 하청기업, 그리고 다시 재하청기업까지 수직구조로 이어진다. 계약과 설계, 감독을 제외하면 선박을 건조하는 일의 대부분을 저임금 근로자들이 일하는 하청기업이 맡는다.

하청과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구조는 불황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 선박의 교체주기는 10년 안팎이다. 이 때문에 조선업은 불가피하게 불황과 호황이 반복된다. 불황에 대비해 본사는 평소에도 고정적인 유지비 부담을 줄이려 애쓴다. 그러다 보니 하청에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형성됐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관계자들이 7월22일 대우조선 하청업체 노조 파업 관련 원만한 노사 협상과 공권력 투입 자제를 촉구하는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불황 충격파’ 하청업체로 전가

조선업이 다른 산업과 비교해 하도급 노동자 비율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2021년 5월 기준 원청 노동자는 3만9921명이지만 하청 노동자는 5만850명으로 20% 이상 많다.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역시 하청기업 직원이 정규 직원보다 많다. 수직적인 하청 구조에서 경기가 나빠지면 받는 타격은 구조의 밑으로 내려갈수록 커진다.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이 이어지자 완제품 제조업체보다 부품·소재 업체들의 실적이 더 나빠진 것과 마찬가지다.

조선업은 2010년대 중반부터 기나긴 불황을 겪었다. 당연히 불황의 충격파는 하청기업에 더 컸다. 임금 역시 그렇다.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의 임직원 연평균 급여는 2015년 7500만원에서 지난해 6700만원으로 800만원 줄어들었다. 반면 하청업체의 임금은 거의 반으로 감소했다. 정규직과 협력업체 직원 간 극심한 임금 격차는 사정이 어려운 기업에서 흔히 나타나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대우조선 협력업체들의 임금은 다른 조선회사 협력사와 비교해도 적다. 대우조선은 협력업체 근로자들을 착취해 연명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대우조선은 정부 지원이 없다면 문을 닫아야 하는 회사다. 산업은행은 1999년 대우조선에 대한 기업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지난 20년 동안 긴급유동성 지원과 출자, 채무보증 등으로 적게는 7조원, 많게는 10조원 이상을 투입했다. 그러나 대우조선은 국민의 부담으로 20여 년을 연명해 오면서도 분식회계와 횡령 등 온갖 비리를 저질렀고, 적자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작년에는 4조4866억원의 매출을 올리고도 당기순손실이 1조7000억원이었고, 올해도 1분기에만 470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누적 적자는 7조7000억원에 이른다. 많이 갚았다지만 부채비율이 529%에 이를 정도로 재무구조도 엉망이다.

숨겨진 부채도 있다. 장부상으로는 자본으로 분류된 2조3328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으로, 대우조선이 수출입은행에 진 빚 약 2조3000억원을 갚지 못하고 무보증 전환사채로 전환해 놓은 것이다. 수출입은행과의 약정으로 올해까지는 연 1%의 이자를 내면 되지만, 내년부터는 정상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조기상환청구권도 올해부터 가동돼, 요청이 있으면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

요즘 한국 조선업계는 오랜 어두운 터널을 벗어났다고 한다. 전 세계 LNG선 수주량을 사실상 독식하고 있다. LNG선 외에도 8000TEU(Twenty-foot Equivalent Unit) 이상 컨테이너선이나 초대형 유조선도 수주물량에서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일본을 압도한다.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분석업체인 클락슨 리서치(Clarkson Research)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체는 올 상반기 994만CGT(Compensated Gross Tonnage, 표준화물선환산톤수)를 수주해 926만CGT의 중국을 누르고 1위로 올라섰다. 상반기 수주 1위는 2018년 이후 4년 만이다. 조선 3사는 이미 305억 달러의 수주 실적을 올려 연간 합산 수주 목표인 351억 달러의 87%를 달성했다. 특히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은 177억7000만 달러를 수주해 이미 올해 목표치 174억4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최소한 3년간의 건조 물량은 확보했다는 것이 조선업체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놀라운 실적에도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을 낸 곳은 한 곳도 없다. 과거 조선업 장기 불황에 따른 저가 수주의 여파 탓이다. 세계 제일이라고 하지만 수익이 창출되는 구조가 아니다. 수주량은 세계 1위를 달리는데 조선소당 1조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한다. 대우조선 역시 30조원대 수주물량을 확보하고 있다지만 올해도 흑자 반전이 어렵다. 업계는 대우조선이 좀비기업으로 남아있는 한 정상적인 수주 경쟁이 어렵고 이익 실현 구조도 만들기 어렵다고 본다. 과거 영업이익을 6% 정도로 잡고 운영해도 적자가 발생했는데, 최근에는 그나마 2% 정도를 예상한다고 한다. 영업이익이 낮아지면 그만큼 하청기업에 손실을 돌리게 되고, 다시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사이의 격차는 커진다.

미국의 견제만 없다면 우리 조선업계는 핵잠수함도 독자 설계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조선은 세계 1등이다. 특히 한국에서 생산되는 LNG선은 기술력에서 압도적이다. 운반 중 기화돼 발생하는 자연 손실량을 거의 제로에 가깝게 해결한다. 경쟁 상대가 없는 상태다. 2023년부터 도입되는 탄소 규제는 새로운 기회다. 탄소배출 규제 추세에 맞춰 천연가스 황금시대가 오고 있다. 당장 내년에는 러시아와 카타르 등 천연가스 대국들의 대규모 LNG선 발주가 예정돼 있다.

수주할수록 적자 쌓이는 구조도 문제

조선산업은 노동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에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2014년에 비하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조선업 근로자는 9만 명을 넘는다. 국내 조선사들의 실적도 조금씩 나아지기는 할 것이다. 수주가 실적에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수주 후 설계부터 건조, 인도까지 2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부터는 업황이 나아진 2020년 말 이후에 수주한 물량이 실적에 반영되기 시작할 것이다.

조선업계의 특성상 잠시의 호황 뒤에는 또다시 내리막길이 찾아온다. 대우조선의 문제는 해결된 게 아니다. 잠시 미뤄진 것일 뿐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재무구조가 급격하게 반전되는 건 불가능하다. 5조원에 달하는 빚을 갚기 어려워지면 대우조선은 또 정부에 손을 내밀 것이다. 하청기업의 사정은 안타깝고 근로자들의 형편도 딱하기는 결정은 결국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국민의 몫이다. 독자 생존이 어려운 기업의 고용 효과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국민에게 무조건 부담을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의 분할매각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른 방법도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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