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된 관광 시스템, ‘신뢰’ 기반으로 회복해야”

[인터뷰] 이훈 한국관광학회장·한양대 관광학부 교수
“올여름이 회복 시작점…관광 트렌드 변화 위한 인프라 구축도 긴요”

관광은 소비를 만들어낸다. 식당과 숙박업소, 교통뿐 아니라 백화점과 면세점 등 쇼핑 분야에서 매출을 발생시킨다. 일자리를 통해 고용을 창출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한다. 이렇게 관광은 다른 분야와 연결되면서 많은 산업을 성장시킨다. 반도체와 자동차, 부품·석유 산업과 함께 외화를 벌어들이는 핵심 산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광을 ‘굴뚝 없는 산업’이라 부른다. 관광산업을 국가의 중요한 경제지표로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한국의 관광산업은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큰 타격을 입었다. 2019년 정점을 찍었던 관광수치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30년 전으로 퇴보했고, 4000곳이 넘는 관광업체가 문을 닫았다. 올해 초 거리 두기가 전면 해제되면서 서서히 기지개를 켜던 관광업계는 코로나 재확산이라는 위기를 또다시 맞닥뜨렸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관광산업의 지표는 어떻게 변했을까. 관광산업을 빠르게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관광은 다시 마주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우리나라 대표 관광 전문가이자 한국관광학회 회장인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는 “코로나19 재확산과 해외 방역, 우크라이나 전쟁, 물가 및 환율 상승 등 여러 변수에 따라 회복의 정도와 속도가 달라질 수 있지만, 관광산업 회복이 시작됐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현시점을 회복의 시작점으로 봤다. 또 “우리나라 경제에서 관광산업의 비중은 3%에 불과하다. 이 비중을 10%까지 끌어올린다면 한국은 큰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관광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산업적 기여도를 인정하고, 성장 가능성에 대해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을 산업의 구조를 개선하고 혁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이 교수에게, 한국 관광산업의 과제에 대해 물었다.

이훈 한국관광학회장 ⓒ시사저널 최준필

거리 두기가 전면 해제된 뒤 처음으로 맞는 휴가철이다. 공항 이용객 수가 증가하고, 여행·교통 분야 거래액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관광산업 분야의 일상 회복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을까.

“이번 여름이 ‘회복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재확산과 해외 방역, 우크라이나 전쟁, 물가 상승과 환율 상승 등 여러 변수에 따라 회복의 정도와 속도가 달라질 수 있지만, 관광산업의 회복이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문화관광연구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문화활동이 ‘여행’인 것으로 조사됐다. 환경 변수들이 긍정적으로 완화된다면 회복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관광산업의 생태계가 한번 멈췄던 상황이다. 회복에 무리가 없을까.

“떠나는 행위와 경험이 ‘여행’이라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 ‘관광’이다. 3년 동안 이 시스템은 붕괴됐다. 이제는 봉쇄만을 최고의 전략이라 말할 수 없다. 삶과 생활, 경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재확산에 대한 우려도 고려해 위드코로나 전략을 세우는 것이 현실적이다. 특히 한국 관광산업은 일본과 중국의 폐쇄적인 감염병 봉쇄정책으로 인해 정체돼 있다. 한국이 먼저 비자를 개방하는 등 한국 관광에 대한 의식을 우호적으로 만드는 정책도 필요하다.”

코로나19 사태로 관광산업이 입은 경제적 피해는 어떤가. 다른 국가들은 관광산업 피해를 어느 정도 회복하고 있나.

“세계관광기구(WTO)에 따르면 세계 GDP는 약 2조 달러 감소했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 시장이 닫히면서 큰 피해를 보았다. 비행기 운항률이 낮아지고 크루즈 운영이 중단되면서 입은 피해가 크다. 코로나19 직후 한국을 찾은 외래 관광객 수는 2019년 동기 대비 94.9% 감소했고, 2020년 동기 대비 74.3% 감소했다. 코로나19 이후 휴·폐업을 한 관광업체 수는 4479곳이다. 전체 관광업체의 12.8%에 이른다. 숙박업뿐 아니라 관광식당업, 여행사, 관광운수업 등이 큰 영향을 받았다.

올해부터는 세계적으로 관광산업의 지표가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8월1일 WTO는 국제관광 지표가 팬데믹 이전 수준의 46%까지 회복됐다고 발표했다. 유럽은 작년 대비 4배 이상 많은 해외 입국이 이뤄졌고, 미주 관광객도 2배 이상 증가하면서 2019년의 40% 수준으로 회복됐다. 인도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중동 지역은 2019년 수준을 넘어섰다. 강력하게 국경을 봉쇄하던 호주는 올 2월부터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입국을 허용하고, 7월부터는 백신 접종 여부 및 코로나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유효 여권과 비자만 소지하면 자유로운 입국이 가능하게 했다. 백신 여권을 도입한 이스라엘·그리스와 EU, 격리 비용과 여행 지원금을 지급하는 사이판의 사례 등도 관광산업 회복을 위한 대응 방안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해외여행을 취소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확진에 대한 우려, 나라마다 다른 방역 규정도 여행 취소의 배경이 되고 있는데.

“감염병에 대한 안전성 문제, 의료 혜택 등이 적절하게 지원되는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상황이다. 가격, 환율, 감염병의 위험, 각종 불확실성 때문에 아직은 해외여행의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국가별로 입국 규정도 다르다. 외교부에서 제공하는 국가별 입국허가규정을 잘 살펴야 한다. 또 해외에서 감염될 것에 대비해 사전에 여행보험을 준비하고, 조치 사항에 대해 미리 숙지할 필요가 있다. 현재로서는 개별여행보다는 여행사가 관리하는 단체여행을 택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최근에는 경제위기가 맞물리면서 관광산업이 받는 타격이 심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항공료와 유류할증료 인상, 원-달러 환율 상승세도 추가적인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여행 비용도 30% 이상 상승했다. ‘베케플레이션’(vacation+inflation·휴가 관련 비용이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급등한 현상)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졌다.

“가격은 여행에서 민감한 변수다. 일단 인바운드(국외에서 국내로), 아웃바운드(국내에서 국외로) 관광은 항공기에 의존한다. 항공료 상승은 여행 가격을 높이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초기에는 여행 욕구가 높아 가격 상승을 감당하겠지만 관광 욕구가 지속되기는 어렵다. 물가가 오르고 가격이 높아지면, 가격 민감도가 떨어지는 형태의 여행을 택하게 된다. 국내여행 중에서도 캠핑이나 트레킹, 차박과 같은 형태가 많이 나타나는 것이 이 때문이다. 북적거리지 않은 곳을 선호하는 경향, 감염병으로 인해 자연환경으로 들어가려는 경향이 가격적 부분과 맞물려 나타난 트렌드다.”

상대적으로 국내 관광이 활성화됐다. 지자체에서도 관광 관련 행사를 하거나 큐레이터를 선발하는 등 국내 관광에 힘을 주고 있다.

“국내 여행지 중에서도 특히 자연환경이 좋은 해안과 산림자원 중심의 휴양지를 많이 찾게 됐다. 캠핑 등 아웃도어 레크리에이션 활동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2012년 85.2%에 그쳤던 국내 관광 경험률은 2021년 93.9%로 높아졌다. 해외여행이 활성화되면 단기적으로 국내여행은 정체될 수 있지만, 이미 많은 이가 국내여행의 매력을 경험한 상황이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관광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 지자체에서 산업을 보호하고 지원하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것도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성수기에는 관광지 물가에 대한 문제도 항상 거론된다. 고물가 시대인 지금, 바가지 물가에 대한 논란이 다시 가시화되고 있다. 제주도를 중심으로 요금 부당 징수 행위를 집중단속하는 등 자발적인 움직임도 일었다.

“먼저 구분이 필요하다.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라 다른 가격을 받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리 가격이 공시돼 있어야 하고, 소비자가 충분히 인지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정되지 않은 가격을 받는 등 바가지 요금과 같은 횡포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SNS를 통해 잠재적 소비자에게 평판이 바로 전달되는 시대다. 국내 관광이 기회를 마주한 지금,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이미지를 제고해야 한다. 상인연합회에서 자체 정화 노력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객의 신뢰를 깨는 전략은 성공할 수 없다.”

이 교수는 "좋은 인력이 관광의 생태계 구조 속으로 들어가야만 붕괴된 관광 시스템을 일으킬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사저널 최준필

코로나19로 인해 관광 트렌드도 변하고 있다. 새로 발굴된 트렌드가 있다면.

“코로나19를 거치며 관광의 여러 대안이 제시됐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안정된 도심의 호텔을 이용하는 호캉스, 일상권을 벗어나지 않는 주변 골목 여행 등도 그것이다. 박물관 여행, 가까운 환경 속에서의 베이커리 여행 등 ‘생활관광’도 대안 여행으로 떠올랐다. 여행이 변화시킨 다른 산업들도 있다. 아웃도어 레크리에이션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SUV 중심으로 차량들이 출시됐다. 일부 전기차가 차량 바깥에 코드를 꽂을 수 있도록 출시된 것도 차박 등 여행 트렌드를 고려한 것이다. 등산이나 골프가 관련 의류산업을 활성화시킨 것 역시 여가가 산업의 지형도를 바꾼 예다.”

워케이션(work+vacation·일하면서 휴가를 동시에 즐기는 근무 형태)도 하나의 화두다. 한 번 이동해 오랫동안 체류하는 일종의 관광 형태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꼭 한 장소에 모여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의 전환이 워케이션을 가능하게 했다. 일과 휴가를 겸하는 방식이다. 오래 체류하는 방식의 여행으로 전환하기 위해 꼭 필요한 트렌드라고 본다. 최근 일본교통공사는 한국의 워케이션 상황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워케이션의 흐름이 중요한 이유는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형태라는 데 있다. 관광에서 탄소 배출을 가장 많이 하는 것이 교통이다. 오래 체류하는 관광이 환경친화적인 관광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여행지의 준비도 필요하다. 관광시설뿐 아니라 일상생활과 여가가 가능한 시스템과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맛집’도 필요하지만 반복해서 먹을 수 있는 ‘밥집’도 필요하고, 멋진 관광 명소도 필요하지만 피트니스 등 일상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설도 갖춰야 한다.”

관광이 지역 소멸, 고령화 문제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 보나.

“일본은 관광을 통해 지역의 사회 인프라와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 관광의 흐름이 고령화로 인해 느려지게 되자, 외래객을 지역으로 오게 해서 지역을 활성화시켰다. 우리도 농촌 지역에 방문객이 많이 가게 하는 등 대안 정책을 확실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외래객이 몇 명 오면 기존 지역 주민 한 사람의 지출을 만들어낼 수 있다. 관광객들이 거주자만큼의 경제적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계산해 지역이 유지되게 만드는 ‘방문자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여행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등을 활용한 비대면 관광이 등장하기도 했다.

“위기 시에 대안으로 시도된 언택트 관광은 여행하고 싶은 마음을 위로하는 데는 기여했지만, 대체재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관광은 현장 체험을 기반으로 한다. 비대면 관광의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는 곳은 많기에, 보완재로서의 역할은 앞으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험적인 여행 지역을 시뮬레이션해본다거나, 국가별 공항 통과 절차를 경험해 보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 가능하다.”

친환경, 안전, 위생 등 새로운 화두도 생겨났다. 관광산업 성장을 위해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무엇이라 보나.

“‘신뢰’다. 갑작스러운 감염병으로 예약을 취소하고 환불하는 과정에서 고객의 신뢰를 잃지 않아야 하고, 여행이 재개되는 과정에서도 믿을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에어비앤비는 코로나로 인해 직원의 25%를 감원해야 하는 위기를 겪게 되자 임원들의 급여를 50% 삭감하고, 전 직원에게 진정성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산업이 정상화되면 다시 채용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좋은 관광 상품과 시설도 중요하지만 꼭 필요한 자원은 인력이다. 한국 관광 서비스가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것도 인력이 기반이 됐기 때문이다. 위기가 닥치면 일자리 안정성이 위협받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좋은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많은 관광 인력이 직장을 잃었고, 관련 학과를 나온 3만 명의 학생이 갈 길을 잃었다. 호텔이나 리조트 실습 제도도 없어지면서 인력을 수급하는 유통구조도 사라졌다. 직업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국 관광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인력이 관광의 생태계 구조 속으로 들어가야만 붕괴된 관광 시스템을 일으킬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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