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 경제위기에 코로나19 재확산까지 더해져 다시 초긴장 모드
2%대 성장률도 ‘간당간당’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 전환)이란 일말의 희망마저 꺾였다.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물가, 금리가 우상향하는 가운데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재계가 초긴장 모드에 들어갔고, 자영업자 상당수는 미련 없이 폐업을 결정할 참이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0만285명 발생한 7월27일 서울 송파구청 재난안전상황실에서 직원들이 코로나19 현황 모니터를 살펴보고 있다.ⓒ연합뉴스
민간소비 타격에 올해 2%대 중반 성장도 불투명
시사저널이 국내외 주요 기관 15곳의 올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분석해 보니 평균 2.5% 수준이었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2%대 중반의 성장률을 지켜 내기가 힘겨워지는 모습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엔데믹 기대에 따른) 민간소비 회복세가 그나마 마이너스 성장을 막고 있었는데, 코로나19 재유행으로 이마저 어려워졌다. 확연히 나빠져 가는 경제 상황이 성장률 전망치에 반영되고 있다”며 “성장률이 올해 2%대 중반, 내년에는 2%대 초반을 기록할 거라 내다보는 기관이 많다. 이대로 가면 내년 이후 경기 침체 국면이 고착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분기(4~6월) 한국 경제는 전분기 대비 0.7% 성장(속보치)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에 따른 민간소비 회복이 성장세를 이끌었다. 민간소비는 의류·신발 등 준내구재와 음식숙박·오락문화 등 서비스를 중심으로 3.0% 증가했다. 지난해 2분기(3.3%) 이후 가장 높았다.
남은 3, 4분기에 0.3%씩 성장하면 한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2.7%)를 달성할 것으로 보이지만, 코로나19 재확산에 발목을 세게 잡히는 형국이다. 황상필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소비심리가 악화하고 있어 (하반기) 우리 경제의 하방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높은 물가 오름세, 주요국 성장세 둔화, 수출을 둘러싼 대외 여건 불확실성 등을 상존하는 리스크로 꼽았다.
현재 한국개발연구원(KDI·2.8%)을 제외한 대부분 기관이 한은보다 낮게 올해 성장률을 전망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올해 2.4%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관측한 DB금융투자의 박성우 연구원은 “민간소비 호조가 지속될 수 있느냐가 하반기 국내 경기를 좌우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역시 2.4%로 예상한 KB증권의 김효진 연구원은 “소비의 바탕이 되는 국내총소득(GDI)은 전분기 대비는 물론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마이너스로 감소했고, 7월 이후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증가하는 것을 고려하면 2분기 소비 호조가 하반기까지 이어지기는 어렵다”며 “전분기 대비 GDP 성장률이 2분기에 우리(KB증권) 예상치인 0.2%를 상회해 호조를 나타냈으나, 3분기에 둔화한 후 4분기와 내년 1분기에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IMF, 올해보다 내년이 더 어려울 것으로 전망
국제통화기금(IMF)이 7월26일 한은보다 0.5%포인트나 낮은 2.3% 성장을 전망했을 땐 적잖은 충격파가 일었다. 국제기구가 한국 경제에 대해 발표한 전망치 중 가장 비관적이어서다. IMF는 지난 4월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5%로 예상했는데 이번에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정부가 부랴부랴 “같은 날 발표된 2분기 GDP 속보치를 고려하지 않은 전망”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의 불안감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제 경기 침체와 성장세 둔화는 고정값으로 굳어져 버렸다. 각 기관이 대부분 비관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어, 제시하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더 낮아질 여지가 크다. 한은도 성장률 하향 조정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낮은 1.7%를 제시한 노무라증권은 소비 둔화와 글로벌 불황 가능성으로 한국의 경기 침체가 2분기에 시작돼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봤다. IMF는 한국의 내년 성장률을 올해보다 0.2%포인트 낮은 2.1%로 예상했다.
서울 명동 식당가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올해 물가 상승세 못 잡으면 큰 위험”
고물가와 금리 인상 러시는 소비 반등을 더욱 제한하고 있다. 8월2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7월 소비자물가지수(108.74)는 외식·농축수산물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6.3% 올라갔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1월(6.8%) 이후 23년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5월(5.4%) 5%대에서 한 달 만에 6.0%(6월)까지 치솟은 뒤 두 달 연속 6%대를 이어갔다.
‘물가가 추가로 오를 것’이라는 경제 주체들의 우려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은은 7월 소비자동향조사를 통해 향후 1년의 예상 물가상승률에 해당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이 4.7%로 6월(3.9%)보다 0.8%포인트 더 올랐다고 전했다. 2008년 관련 통계가 시작된 이래 역대 최고 수준이고, 상승 폭도 2개월 연속 최대 기록을 세웠다. 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강해지면 경제 주체들이 오른 물가 눈높이에 맞춰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인상해 물가 상승을 더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한은 입장에선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8월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물가 (상승률) 수준이 2~3%면 국민이 물가 상승을 못 느끼고 경제활동을 하지만 6~7%가 되면 (상승세가) 가속된다”면서 “6%를 넘으면 훨씬 더 큰 비용이 수반될 수 있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거시적 측면에서는 물가 오름세가 꺾일 때까지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물가와 더불어 한·미 기준금리 역전 상태도 8월25일 열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에서의 기준금리 인상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7월27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두 달 연속 ‘자이언트 스텝’(한꺼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은 뒤 미국의 기준금리(2.25~2.50%)는 한국(2.25%)보다 높아졌다. 한은으로서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격차를 좁혀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과 원화 약세, 환율 변화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 등의 위험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 처지다.
석병훈 교수는 “정부에서 9~10월쯤 물가 상승이 정점을 맞이할 거라고 전망하는데, 지금처럼 기대인플레이션율이 하락할 기미가 없는 한 속단하기 어렵다”며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지고 다른 변수가 없다고 전제해도 물가상승률은 (정부 예측보다 늦은) 연말쯤 고점을 찍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고 했다. 다만 석 교수는 “올해 말까지 물가 하락 안정화 추세를 확인하지 못하면 내년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방에서 경고음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재계는 코로나19와 시장 상황, 글로벌 공급망 등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김정환 GB투자자문 대표는 “코로나19 재유행이 계속되더라도 방역조치가 예전 락다운 국면 때만큼 심하진 않을 것 같고, 국내 기업들의 전반적인 실적 흐름도 아직 나쁘지 않다”면서도 “확진자와 위중증 환자 수가 줄어들지 않고 각국의 보호무역 강화 등 대외 리스크도 점점 커져 가는 모습이라 상황을 낙관하긴 분명 어렵다”고 말했다.
7월27일 서울역 광장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꺾인 경영 활력, 희망 잃은 자영업자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주요 대기업들은 지난 4월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 해제와 함께 사내 방역지침을 풀었다가 최근 다시 강화했다. 삼성전자는 임직원들에게 간담회를 포함한 회식과 대면 회의·교육·행사를 자제해 달라고 권고했다. 또 국내외 출장을 가급적 자제하되 불가피한 출장 시 인원을 최소화할 것을 주문했다. 50세 이상은 4차 백신을 접종해야 출장이 허용된다. 해외 사업장이 있는 외국 현지의 코로나19 상황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중이다.
현대차는 교육·행사·회의를 비대면으로 하도록 권고했고, 국내 출장을 제한적으로 허용키로 했다. 사적 모임 등 업무 외 활동도 자제할 것을 주문했다. 다른 기업들도 코로나19 재확산세를 주시하며 정부의 방역조치에 따르고 있다. 안 그래도 산적한 현안 속에 잦아드는 줄 알았던 감염병 리스크까지 되살아나자 경영 활력이 뚝 떨어졌다.
엔데믹 기대감으로 업황 회복세를 보인 항공·여행 업계는 찬물을 끼얹은 분위기다. 6월 국제선 월간 탑승객은 100만 명을 돌파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이다.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폭발하면서 고환율과 고유가 등 불안정한 대외 환경을 압도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재유행으로 모처럼만의 활기가 꺾여 가고 있다. 실제로 여행사마다 예약 취소 문의가 줄을 잇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내에 국제선 운항을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의 50% 수준까지 올리겠다는 정부와 항공사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어느 분야보다 동요가 심한 곳은 자영업이다. 국내 최대 온라인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코로나 재확산으로 인한 불안감과 피해를 호소하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하루 신규 확진자가 10만 명을 웃도는 상황에서 자신도 감염을 피하지 못해 엄청난 영업손실을 입었다는 자영업자가 부쩍 많아졌다. 상당수가 더 버틸 여력을 상실한 채 폐업 위기에 내몰렸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소비심리 개선과 금융지원 확대는 물론 공공요금 할인 등 자영업자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의 지원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자영업자 3명 중 1명은 “폐업 고려”
복합 경제위기에 코로나19 재확산까지 더해지면서 자영업자 3명 중 1명은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시장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자영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7월31일 발표했다. 6월30일부터 7월8일까지 음식점업과 도소매업, 기타 서비스업을 하는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조사가 시행됐다.
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33.0%는 폐업을 고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폐업을 고려하는 이유로는 ‘영업실적 감소’(32.4%)를 든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임차료 등 고정비 부담’(16.2%), ‘자금 사정 악화 및 대출 상환 부담’(14.2%), ‘경영관리 부담’(12.1%) 등이 뒤를 이었다.
폐업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영업자에게 이유를 묻자 ‘특별한 대안 없음’(22.7%), ‘코로나19 종식 후 경기회복 기대’(20.1%), ‘영업실적이 나쁘지 않음’(14.9%) 등의 순으로 응답률이 높았다.
올해 상반기 자영업자의 70.6%는 매출 감소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매출 감소 폭은 평균 13.3%였다. 올 상반기 순이익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평균 11.8%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순이익이 늘어난 자영업자 비율은 31.2%였다.
올 상반기 자신과 가족을 제외하고 임금을 지급하는 종업원 수를 늘린 자영업자는 전체의 1.8%에 불과했다. 자영업자 대다수는 지난해 상반기와 비슷하게 종업원을 유지(78.2%)하거나 감원(20.0%)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반기 전망을 묻는 질문에 1년 전보다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응답한 자영업자 비율은 59.0%에 이르렀다. 매출 감소 폭 전망치는 평균 7.8%였다. 특히 응답 자영업자의 20.8%는 올 하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예상되는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는 ‘물가 상승에 따른 재료 매입비 부담’(23.6%), ‘임차료 상승 및 세금 부담’(17.2%), ‘금리 상승, 만기 도래에 따른 대출 상환 부담’(14.8%), ‘코로나19 재확산 우려에 따른 전반적인 소비심리 회복 한계’(10.5%)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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